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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고민과 선택, 인생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방법
관리자 ㅣ 2019-10-07 11:36 ㅣ 189

아픔이 제약의 이유가 될 수는 없어

안녕하세요. 올해로 불혹을 앞두고 있는 혈우 환우입니다. 슬하에는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인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나이 40이 되면 엄청나게 어른이 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는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마음속에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태어나면서 혈우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 머리에 출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처음에는 그냥 머리가 큰 줄 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숨을 안 쉬어서 검사를 해보니 머리에 출혈이 있었고,

수혈을 받아 겨우겨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는데커서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보니

그때 아버지께서 느꼈을 슬픔이 이해가 됩니다.

어렸을 때는 정말 열심히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부모님이 공부에 크게 스트레스를 주시지 않았던 터라

축구, 야구, 농구, 피구 등을 하며 활발하게 뛰어놀았습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난 후에는 발목과 손가락 등이

퉁퉁 부어오르기 일쑤였습니다.

관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놀아서는 안 되지만, 어렸을 때는 그렇게 놀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혈우병이 있는데도 왜 그렇게 놀았어?’라고 묻는다면 동네 아이들과 놀 상황이 되다보니 놀았을

뿐이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질병을 이유로 스스로에게 제약을 주는 것이 참 싫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규칙적으로 약을 맞으면 되는 것이었을 뿐이지 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학교 출석에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때 달랑

졸업장 한 장 받았던 게 생각납니다. 남들 다 받는, 그 흔한 개근상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뒤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 계신 어머니께 얼마나 죄송하던지. 옆자리 친구놈은 상장을 10개도 더 받았는데.

 

공부는 선택을 낳고

그 일에 제 나름 충격을 받았는지 ,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내내 공부했습니다. 막상 시작해보니 공부란 것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습니다. 집에 와서도 매일 밤 1130분까지 공부하니 성적이

잘 나왔습니다. 등수도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를 하다보니 몸이 약해졌습니다. 위염, 장염, 간염 등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 지경이 되자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여 고 3때는 3개월이나 쉬었습니다. 1학년, 2학년 때 고생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깊은 좌절감에 슬럼프까지 왔습니다.

그래도 수능시험을 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성적에 맞춰서 가장 먼저

입학통지서를 보낸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했더라면 지금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만, 만일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전공은 전파공학을 선택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보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적어도 2학년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앞으로 먹고 살아갈 걱정을 하니 다시 학업에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학부를 마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자공학과 석사를 마쳤습니다.

석사를 마친 후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진학할지, 취업을 할지를 두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내심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입사원서를 낸 전자회사 두 곳에 합격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있었던 지라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직장생활이란 끝없는 고민의 순간들

저는 국내의 한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전자공학 전공자였던 저로서는 연구실에서 근무를 해야 했는데,

연구만 하는 건 너무도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매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9년을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어려운 일들도 잘 이겨내며 회사에서 MBA(경영학석사) 교육을 시켜줄 정도로 나름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 때 공부한 경험, 학생 때 경험했던, 다양한 활동들이 회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혜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행동하여 경험으로 체득한다는 사실도 몸소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인사부로 부서 이동을 하였습니다. 실적을 올려 인센티브(성과금)

받는 것도 좋고 인정을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부서를 옮긴 지

이제 7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고충이 있지만, , 언젠가 이 경험이 제 인생에 또 어떤

깨달음을 줄지 기대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근무의 장점이라고 하면 안정적인 급여와 주말 휴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그만두고 나면 막상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다 보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업무를 깊고 넓게 하려고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업무량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사무직이다 보니 근무 중 출혈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만일 출혈이 날 경우에는

오후에 휴가를 내고 집이나 재단에 가서 주사를 맞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요즘은 한 회사에 서 50세 넘어서까지

다니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조직 내 책임자, 임원들도 젊은 나이대로 교체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막연히

직원의 충성도를 바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직원이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서 회사와 함께 윈윈(win-win)하고 50세가 되기 전에 퇴사한 뒤

자신만의 분야를 살리는 것을 희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시킨 일들을 잘 해왔는데, 이제는 스스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나가야 한다니 막막한 상황입니다. 전문 분야를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준비하고 회사에서 스스로에 대해 마케팅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 전문분야를 무엇으로 정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길을 걷자

이따금 스트레스를 받으면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서 국선도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사범자격까지 취득했습니다. 나아가, 다양한 명상을 지속적으로 배우며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출혈도 자주 일어나는 편입니다. 따라서 우리 환우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직장생활 중 공황장애가 찾아와 많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명상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명상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매월 1회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반기부터는 12일 과정으로 강좌를 진행할 계획도 있는데요.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우리 환우분들도

명상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취업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 조언을 드리자면, 미래의 걱정과 두려움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명확한

목적이나 진지한 고민 없이 돈, 명예, 권력 등의 욕심으로만 취업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독이든 사과를

먹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생각을 가슴으로 내리고,

내 가슴이 가볍고 편안한 선택을 하시면 분명 후회가 없으실 것입니다. 그 선택이 세상의 구조나 남들의 시선과

다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생의 정답은 오로지 내 가슴만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 환우분들이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평안하게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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