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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여성 혈우병이라 더욱 특별한 나
관리자 ㅣ 2020-10-05 13:57 ㅣ 69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모 대학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 즉, 우리가 흔히 아는 병원 검사실에서 검사를 담당하는 임상병리사로 생활하고 있는 노경미라고 합니다. 이번 코헴지의 주제가 여성 혈우병이라고 하여 부족한 글솜씨지만 흔하지 않은 여성 혈우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던 학창 시절

저는 B, 경증 혈우병을 가지고 있는데 태어날 때는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5살 때, 무릎을 다친 뒤, 무릎이 많이 부어 동네 병원에 갔는데 치료를 하면서 지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가서 검사를 받았고, 혈우병이라는 병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뛰는 것과 과격한 운동을 피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당부로 어렴풋이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구나.’라는 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느끼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저의 병명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병에 대한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경증인지라 지속적으로 아프진 않았습니다. 가끔 발목이나 무릎 등 관절 부위에 이유 없는 통증이 있거나 다치게 되면 남들보다는 조금 오래 가는 편이었습니다.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저희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월경을 제일 걱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흔하지 않지만 그때 당시엔 여성 혈우병이 더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에 대하여 주변에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경험해보지 못하셔서 예방요법 즉, 미리 주사를 맞고 월경을 대비할 계획을 세워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주사를 맞지 않아도 지극히 정상적으로 남들과 똑같이 월경을 하여 큰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워킹홀리데이 경험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호주,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외국에서 일을 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거주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성인이 되면 무조건 해야겠다고 꿈꿔왔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당부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이나 운동처럼 액티비티한 활동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저로서는 부모님의 당부를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더욱더 실천으로 옮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수많은 고민을 한 뒤, 편지 한 장과 함께 워킹홀리데이라는 주제로 PPT를 만들어 부모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절대 허락을 해주시지 않을 것 같다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부모님께서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주사를 가지고 외국에 갈 수 있고, 스스로 주사를 맞을 수 있게 연습을 한다면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전까지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채혈 연습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스스로 주사를 맞는 건 무서워하던 저였는데 워킹홀리데이를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바로 자가주사 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호주로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앞으로 살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의 용기를 믿고 응원해주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람 있는 임상병리사 생활과 새로운 목표

우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들께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합니다. 저는 그 진단을 위해 필요한 각종 검사(소변, 혈액 등)를 시행하는 임상병리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응고인자 확인을 위해 주기별로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는데, 그때 피를 뽑는 사람을 포함하여 검사실에서 응고인자 검사를 하는 사람까지를 통틀어 임상병리사라고 합니다.

제가 이러한 병리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 자주 가다 보니 병원이 친근해졌고, 스스로 몸의 컨디션 및 건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미래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응고인자 검사를 위하여 주기적으로 채혈실에서 가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그 뒤로 병리사라는 직업을 자세하게 알아보던 중 병원의 주된 업무인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이 매력이 있어 병리사를 미래직업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병리사로서의 생활은 환자의 병을 진단할 때 신속, 정확한 결과를 내주어 최전선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에 앉아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 따로 예방요법이나 유지요법을 시행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운동처럼 어떤 활동을 하기 전엔 항상 예방요법으로 주사를 맞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근무를 하면서 우리 몸의 유전자를 공부하는 분자생물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분자생물학과 관련된 공부를 더 해나갈 예정입니다. 제가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앞으로 우리가 가진 수많은 유전물질을 연구하여 병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유전자의 변형을 일으켜 질병을 낫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전자에 관한 공부를 더 많이 하여 기회가 된다면 병원이 아닌 제약회사나 연구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혈우병이나 다른 질병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그런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저의 인생 최종목표입니다.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혈우병

솔직하게 말하면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왜 나는 남들과 다르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점점 생각이 성숙해지면서 혈우병이라는 질병이 제 인생에서 전부가 아니며 그런 점을 마음에 품고 위축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처럼 여성 혈우병은 더욱 특이 케이스이기 때문에 저는 언제 어디서든 혈우병을 당당히 밝히고, 오히려 저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을까요? 저는 혈우병이라는 병으로 저의 직업과 인생의 목표를 정할 수 있었고, 혈우병으로 인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저의 생각과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치지 않게 항상 조심하되, 마음만은 넓게 생각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는 부모님, 저는 태어날 때 부모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로 지금의 저의 가치관과 생각이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시고,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가정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혈우재단을 통해 연락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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