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아들 - 김은주 님 (김의찬 환우 어머니)

[코헴지 179호] (2021년 5/6월)

안녕하십니까. 한국혈우재단의 설립 30주년을 맞이한 수기 공모를 보 고, 우리 아들의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한국혈우재단이 있어 늘 감사했고, 항상 큰 힘이 되어왔습니다. 차가웠던 겨울을 지나 이제 완연한 봄날의 기온에, 꽃망울을 이내 활짝 틔운 벚꽃을 보며, 참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기분좋은 하루입니다.

울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출혈로 커다랗게 부어 오른 혹이 나있어서 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야만 했고, 한 달 넘게 차가운 유리막 속에서 응고인자를 맞으며 지냈답니다. 혈우병 진단과 함께 고사리같은 손등에 주사 바늘을 찌를 때마다, 아이와 함께 울었던, 참으로 암울하고 슬펐던 그 시간은 어느새 다 지나가 버렸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을 마친 중2인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중등증 환우여서, 발목 관절에 가끔 출혈이 생길 때면 주사를 맞곤 했었 는데, 4년 전 정기 검사에서 몸에 항체가 생겼다며, 이에 대한 예방요법으로 2~3일 간격으로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쩍 먹성이 좋더니 체격이 엄청 좋아지더군요.(^^) 이 제는 살이 제법 쪄서 몸무게도 많이 나간답니다. 그래서인지 혈관을 찾기가 매번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주사를 맞으러 올 때마다 결국 수간호사가 나서게 되고, 주사를 맞으러 갈 때면 몇 번이나 바늘을 찔러야 해서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자가 주사의 중요성은 알지만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이 일은 저와 아들 에게는 매일의 과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의 손등은 온통 주사자 국으로 군살과 흉터가 생겼습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오늘은 주사를 가장 잘 놓는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실에서 계시기를.’ 소원하며, 주사실에서 나오는 아들의 얼굴표정을 보고 오늘은 단 번에 성공했는지, 여러 번 찔렀는 지를 가늠하곤 합니다. 엄마가 속상해 할까봐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는 아들이지만 가끔은 엄마에게 물음을 던지곤 합니다.

 “언제까지 나 이런 주사 맞아야 돼? 내 손등은 불쌍해. 아마 주사를 1000번, 5000번도 넘게 맞았겠지.” 라는 아들의 말에 저는 어떠한 말도 해 줄 수 없어 고개를 떨궜습니다.

두, 세 달에 한 번씩 항체수치 검사를 하고 있는데, 결과를 확인하러 갈 때면 늘 잔뜩 긴장해야만 했고 의사 선생님의 얼굴 표정만 쳐다보았습니 다. 행여나 지금 투약하는 약이 지혈이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염려하며 항체수치가 내려갈때면 함께 기뻐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출혈이 생겨 응급실을 이용할 때마다 처치에 몇 시간씩 시간이 걸려서 마냥 서서 기다려야만 했는데 이제는 손에 익어서인 듯,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의 처치가 매우 빨라졌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몸에 출 혈이 생길 때면 응급실에 있는 병원주사실로 달려가야만 했고 그럴 때마 다 소요되는 시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무리가 될 정도더군요. 내가 아이에게 직접 주사를 놓을 수만 있다면 병원을 오가는 시간과 경비, 체력소 모를 줄일 수 있을텐데 생각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혈관을 찾는 것이 그저 어렵기만 합니다. 계속 실수하다 보니 자신감을 잃었고 아파하는 아들에게 더 이상 손을 내밀어 달라고 할 수조차 없네요. 

코로나로 인해 학교생활이 중단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다 보니 바깥 활동보다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불어난 체중으로 인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유난히 무릎과 발목에 출혈이 잦았습 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발목이 붓거나 오금이 아파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해 힘들어 하였답니다. 행여나 학교 보건실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화들짝 놀라 당황해했고, 학교로, 병원으로, 여기저기 달려갔었습니다. 발목엔 항상 압박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고, 체육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했습니다. 예방요법으로 주사를 맞고 있었지만 출혈이 있는 날이면 매일같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니곤 했습니다.

몸에 항체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지금 맞고 있는 주사약이 아들에게 얼마나 반응을 하는지, 혹 출혈을 멈추는데 효과가 없으면 어쩌 지 염려가 되었답니다. 더욱이 출혈이 잦아지다 보니 관절에 손상이 오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주사를 맞고 돌아온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에게 지금은 상태가 나아졌는지, 몇 시간 후 차도가 있는지 다시 물어보았고, 자고 일어나면 또 물어보았답니다. 아들의 대답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출혈이 멈추었구나 생각했고, 뛰어놀면 많이 좋아졌나보다 스스로 판단하며 아들의 출혈빈도를 매일같이 체크했답니다. 

아들의 중학교 생활은 유난히도 발목관절과 오금부분에 출혈이 잦아, 아침시간이면 버스를 타고 내리는 것이 힘들어 늘 등교가 지체되었고, 학교 계단을 오를 수가 없어 교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 든 아들은 친구들의 남다른 시선이 싫어서 애써 계단을 오르며 아프지 않은 척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예방요법을 통해 출혈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의 치료인데, 혹 출혈이 있다 해도 최대한 신속하게 응고인자를 투여해 몸속에 혈액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음에도, 늘 똑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출혈이 생기는 아들을 볼 때마다, 더 빨리 대처해 주지 못했던 엄마의 미약함에 속상했고 미안하였답니다.

지난 여름, 정기검진을 통해 관절사진을 찍어본 결과 건강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지금은 열심히 예방요법을 통해 출혈을 최대한 줄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한국혈우재단의 지원 덕택에 수영도 다닐 수 있어 좋았고,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예상을 초월하는 검사비용에 난감해 했었는데, 그 때마다 의료비 지원까지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답니다. 또한 지난 12월에 병원의 소개로 다봄 프로그램의 주사교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네킹의 손 모형에 서 직접 주사기로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는 방법을 배우면서 이제껏 엄 두도 못냈던 자가주사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들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하고 병원주사실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께 혈관의 위치를 자세히 물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에게 아들이 선뜻 손을 내놓지는 않는군요. 한 시간 거리, 가까운 병원을 갈 수 있으니까요^^. 

여전히 우리 아들은 항체 때문에 기존에 맞고 있던 애드베이트 주사를 맞고 있는데 반감기가 더 긴 애디노베이트로 많이들 전환하고 있다고 하 네요. 우리 아들도 하루라도 더 빨리, 더욱 향상된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 으면 좋겠네요. 아니, 기왕이면 주사가 아닌 복용하는 약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오늘도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하얀 벚꽃들이 마치 힘내라고 응원하듯 봄바람에 꽃잎을 왕창 뿌려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