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는 꼭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평범한 환우입니다. 혈우병 때문에 아파하며 치열하게 고뇌하

던 청년기도 지나고, 이제는 이 혈우병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마음으로, 병을 어르고 달래며 하루를 보내

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날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오늘 오카리나 수업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수업을 들은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모인

횟수로는 네 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카리나를 불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얻어가고 있는

시간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오카리나 수업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무척 난감했습니다.

솔직히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선뜻 교육에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오카리나를 받아들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망설이던 그 때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올해에 뭐가 되었든 한 가지는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오카리나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작은 구멍들을 막고 수줍게 ‘도’ 음을 내던 그때의 마음으로, 그간의 오카리나 교육의 느낌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수업 첫날, 부산의원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어린아이부터 60대 이상의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의원 사

무실 한 칸의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보여 앉아있었습니다.

오카리나는 난생 처음 보았습니다. 저마다 어설프게 오카리나를 받아들고 강사님의 설명에 따라 기본 운지법을

하나하나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장년층 환우들은 처음 오카리나를 받아드는 데도 약간 힘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깨와 팔꿈치, 손목 등의 관절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시간 오카리나를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들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강사님을 따

라하였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는지, 첫 수업인데도 수업 내내 박수와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거위를 닮은 악기 오카리나>

‘오카리나’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일본악기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의 볼로냐

지방에서 만들어진 악기였습니다. ‘오카리나’라는 말도 볼로냐 사투리로 ‘작은 거위’라고 합니다.

그 얘길 듣고 난 후에 오카리나를 보니 정말 거위처럼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오카리나의 뿌리는

19세기보다 훨씬 이전이라고 합니다. 그 기원을 찾자면 만년도 더 된 아득히 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합니다. 주로 흙이나 나무, 뼈, 도자기 등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오카리나에서 마치 자연을

닮은 아련한 음색이 묻어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던 첫 번째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부터는 <나비야>, <작은 별>과 같이 간단한

동요를 연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중에서는 한 초등학생 환우가 유독 잘 따라 불렀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두가 발군의 실력을 보인 그 어린이의 연주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툴지만 천천히 계이

름을 보며 끝까지 완주한 중년 환우에게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마다 오선지 위에 있는 콩나물을 빌어 가슴 속에 담아뒀던 공기를 ‘후’하고 시원하게 밀어냈습니다.

그 시간이 참 쏜살같이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불협화음의 오카리나 소리가 다른 환자와 선생님들께 불편을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환우와 그 가족들끼리 모여 뭔가를 배운다는 사실이 더

뜻 깊게 다가왔습니다.

<서툴지만 즐겁게 연주했던 시간>

사실 이번 오카리나 수업에 참여하면서, 제가 무슨 오카리나 전문 연주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잘 하기보다는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루하루

오카리나를 배우면서 음악이 주는 기쁨이 의외로 크다는 걸 깨닫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기를 후후 불어내면

서,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연주란 것을 해보면서, 그것이 내면의 표현임과 동시에 마음 속 뭔가가 풀어지는 미묘한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매번 수업 후 이어지는 뒤풀이 시간에 화기애애한 대화까지 나누면서 전에 없이 생활에 활기가 감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아주 소소한 기쁨과 재미들이 실은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

하게 지켜주는 튼튼한 버팀목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수업시간에는 강사님이 연습곡으로 <홀로 아리랑>의 악보를 건네주셨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잠시 술렁임이

일었습니다. 특히 중장년들의 탄식이 어느 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동요와는 달리 손가락을 더욱 부

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곡을 연주하다보면, 예상컨대 아마도 불협화

음은 갈수록 더 심해지겠지요. 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능숙하게 잘 해내기는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모두가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

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한 달에 두 번 찾아오는 오카리나 수업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