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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한계를 두지 않는 것
관리자 ㅣ 2018-02-07 14:32 ㅣ 522

치료받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년 여름에 다리수술을 받고 서울에 있는 혈우 환우 쉼터에서 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재단의원에서 재활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수술을 계획하는 환우, 특히 가까운 시일 내에 수술을 고려하고

있는 대학생 환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저는 두 살 때 되던 해에 혈우병인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아기였을 때 확진을 받은 터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무릎보호대를 차고 생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릎 출혈을 막으려고 보호대를

찼던 것 같습니다. 그게 혈우병에 관한 저의 첫 기억입니다.

저는 현재 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파주에서 살아왔는데 쭉 살고 있습니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파주에는 혈우병으로 진료를 볼 수 있을 만한 병의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살았던

곳은 파주에서도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내에서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사를 맞으려면 굳이

버스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버스 배차간격이 족히 2시간은 되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자가주사를 할 줄 아는 분들께서는 이런 상황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시에

자가주사를 할 줄 몰랐던 저에게는 그야말로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가려면 2시간여를 기다려

버스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거나 119를 불러야만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부모님의 걱정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의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 제가 혈우 환우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학교에서는 부모님 없이 활동해야 하고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안전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제가 다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괜찮은 척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즐겨하던 농구, 발목에 무리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주변 사람들에게 혈우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였습니다. 혈우병이 있다는 것과 몸이 아프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농구부에

들어갔습니다. 농구부에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농구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농구를 할수록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농구를 잘 하려면 쉴 새 없이 달리고 점프를 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발목에 무리가 간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10분 이상 걷거나 계단에 오르내리기만 하여도 통증이

심해졌고 발목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는 날이 많아지던 중 우연찮게 재단의원에서 정기적으로 유명철 교수님께서 정형외과 클리닉을

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정형외과 클리닉을 받고 발목 인대 사이에 뼈가 자라서 깎아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2주 정도 입원을 한 후에 실밥을 뽑고 서울 재단 근처에 있는 환우 쉼터입소하였습니다.

이번에 쉼터에 입소를 하면서 이러한 환우 쉼터가 있다는 것에 정말로 많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보통 정형외과적

수술을 받으면 일정 기간 꾸준히 재활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희 같은 혈우 환우들은 거동이 어려운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성실하게 재활을 받고 빨리 회복하는 데

어려움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혈우 환우들끼리 한 공간에서 합숙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재단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쉼터에서는 한 달 반 정도 머물며 재활을 한 끝에 퇴소하였고 현재까지도 헬스를 다니며 재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혈우병이라서 안 된다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놀러다니느라 공부에 소홀하였는데 그런 상태에서 대학에

가려고 보니 제가 입학할 수 있는 학교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게 기숙학원에 들어갈 것을 권하였고

이곳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아마 누군가 저에게 살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기숙학원에서 보낸 시간들을 말할 것입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들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들을 공부하는 데 썼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혈우 환우라는 것은 알리지 않았습니다. 출혈이 생겼을 때는 몰래

학원 양호실에 가서 주사를 맞았습니다.

기숙학원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적이 올라가는 기쁨과 함께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런 저런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청소년기에 있는 환우들은 아마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친구관계, 대학진학, 취업 등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칼로 무 자르듯, 뭐라 딱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나는 혈우병이기 때문에~’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혈우

환우들은 신체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일들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훗날 많은 후회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보기도 전에 한계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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