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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행복한 피아니스트
관리자 ㅣ 2018-10-10 10:09 ㅣ 59

피아니스트로 이끈 한 순간의 선택

안녕하세요 현재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진강우라고 합니다. 저는 아기였을 때 혈우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태어난 지 6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제 몸에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보시고 병원에

데려가셨는데 혈우병A 중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출혈 때문에 조퇴를 하거나 쉬는 날이 많았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수업이 끝나면 형이 학교로

데리러 오는 적이 많았습니다.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출혈 때문에 체육 시간에는 주로 운동장에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노는 때가 많았고 격렬한 운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대학교 영문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몰두하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주로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한양대 영문과 수시전형에 응시하였지만 기대와 달리 잘 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선 다시 음악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였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영문과로 진로를 바꿨기에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다시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교회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했습니다. 다시 시작한 음악이

너무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매일 방과 후면 교회로 달려가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결과 한양대 피아노과에 특차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영어와 피아노를 동시에 배우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학창시절의 목표를 모두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한순간의 선택이 제 운명을 결정한 셈입니다.

 

연습은 생활의 일부, 항상 최선을 다하자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마음에 품게

되었는데, 저는 유럽과 미국 두 가지 행선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음악 전공자들은

대부분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많이 가지만 장학금제도가 좋고 음악과 영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제 발길을 미국으로 돌리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마침 오디션을 본 미국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된 것도 미국행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습니다. 현재는 대학을 졸업하여 위스콘신 메디슨 음악대학과

밀워키 콘서바토리(conservatory, 외국의 음악전문 평생교육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아니스트로서 미국 내 여러 지역을 돌며 연주활동과 세미나 등에 참석하면서 나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주로 음악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하거나 전문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저는 간단히 연습을 하고 컨퍼런스나 수업준비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후에는 수업, 레슨, 리허설

등에 참여하는데 이렇게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저녁을 먹을 때쯤 지치곤 합니다. 그래도 연습을 거를 수는

없어서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피아노 솔로곡을 연습합니다. 피아니스트에게 있어 연습은 생활의 일부입니다.

연습을 하고 음악이 서서히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하루 빨리 연주할 곡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안 그래도 가까운 시일에 클리블랜드 음악원 현악 교수진과의 연주회가 잡혀 있습니다.

바쁘긴 해도 음악인에게 계속해서 연주 제의가 들어온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살 수도, 여유롭게 살 수도 있지만 저는 일을 많이 벌리는 스타일이라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시간을 빼면 늘 개인연습을 하거나 리허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저의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매번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액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나오는 조건으로 박사 오디션을 통과하였는데, 그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보답하기 위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여 미국생활에

적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있으면 피하기보다는 무조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인터뷰도 자신 있게 하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

해외에서의 출혈관리는 환우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문제일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예방차원에서 일주일에 세 번은

응고인자를 맞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응고인자가 모두 떨어지면 (미국)재단에서 택배로 약을 보내줍니다.

특이한 것은 약값을 보험회사에서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국가가 지원하는 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알아서 사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비용은 한 달에 한 30~60만원 정도 됩니다. 대학생 신분이면

약값이 대부분 학생보험에 적용되어서 한 달에 약 10~15만원 정도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학교에

다닐 때 학교 장학금으로 약값을 충당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 테이프를 들으며 피아노를 치고는 하였습니다. 피아노를 치다보면 아픈 게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혈우병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혈우병이

없었다면 신체적으로 더욱 건강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음악이 제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 현재로서는

음악이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피아노를 연주할 때만큼은 제 혼이 누구보다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환우분들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말고 나를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일말입니다.

앞으로 저는 활동영역을 넓혀 좋은 음악인들과 연주하고 배우며 살고 싶습니다. 음악 페스티벌을 여는 것도

생각 중에 있는데 아직은 외국인으로서 넘어야 할 관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하여

페스티벌을 엶으로써 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장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음악인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할 계획이고, 미국과 한국에 있는 혈우 환우들을 위한 연주도 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다른 환우 분들에게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며, 모든 환우분들이 꿈을 찾고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링크된 주소(https://www.pianistkangwoojin.com)로 들어가면 진강우님의 연주영상과 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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