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을 가진 쌍둥이 엄마 이야기 - 황선녀 님(문서진, 서준 어머니) 

[코헴지 179호] (2021년 5/6월)

서른에 결혼해 4년 만에 사랑스러운 아기가 생겼다. 그것도 둘씩이나. 걱정 반, 기대 반... 우리 아기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육아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은 아니길... 지난 30년을 살면서 봐왔던 남동생의 힘겨웠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혈우병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제발 아니길, 제발 아니길... 기도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마음이 시려왔다. ‘아무렴 어때, 내가 잘 돌보면 되지. 엄마는 강하니까!’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좀 더 잘하면 되지!’하고 혼자 다짐해 본다. 

얼마나 아기 욕심이 많았던지, 쌍둥이를 주셨다. 출산부터 쌍둥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데까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걸렸다. 인큐베이터에서 40일, 치료실에서 5일…. 출산 후, 쌍둥이가 너무 보고 싶은데, 하루에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20분. 처음 45일간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던 나의 피붙이. 드디어 집에 데려와 마음껏 만지고 안아볼 수 있는 생각에 가 슴이 벅찼다. 

남자 쌍둥이, 너무 힘들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 한 명, 아니 두 명의 사내아이의 육아, 너무나 힘들었다. 한 달, 두 달, 100일 그리고 첫 돌.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들어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쌍둥이들. 엄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쌍둥이를 출산하고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면회 시간을 기다리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쌍둥이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기들은 잘 크는지? 생김 새는 변했는지?” 안부를 서로 묻고 지내다, 자주 만나기로 약속했다. 엄마 둘, 아기 넷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을 떠나 새로운 친구 집에서 쌍둥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것저 것 만져보고, 올라타고, 밀고, 당기고 하다가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보가 터진다. 1ｍ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았다. 만져 주고 비벼주고 달래니 울음을 그치고 다시 활력을 찾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쌍둥이를 씻겼다. 그런데 낮에 머리를 ‘쿵’ 했던 둘째 녀석이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배탈이 났나?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이 둘째 녀석을 흔들어 깨워보았다. 이내 심각함을 깨닫고 남편은 둘째를 안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먼저 출발한 남편을 뒤따라 택시를 타고 쫓아 갔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 우리 아 이들의 혈우병과 관련해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낮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우리 아가가 혈우병을 가지고 있어요.” 뇌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CT 촬영을 마치고 수술을 위해 둘째의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대답은 심각했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합니다.” 

뇌출혈로 인해 뇌의 손상이 커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너지 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을 재촉했다.

“빨리 수술해주세요. 선생님.” 

선생님도 혈우병과 관련해 수술할 걱정을 하셨다. 

“선생님 저희가 개금백병원에 혈우병 때문에 자주 진료를 받았었는데, 거 기서 수술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의 상태를 잘 아는 병원이라 조금 더 나을까하는 생각에 선생 \님에게 물어봤다.

“그 정도 시간은 있네요. 어머니 편하신 대로 하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급하게 구급차를 호출하고 개금백병원으로 달려갔다. 다시 한 번 아이 의 상태를 설명하고, 1시간 만에 수술방에 들어갔다. 1시간, 2시간... 7시간이 지나서야 수술이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은 잘 되었으니, 이후는 아기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설명하셨다. 의식을 찾기 위해서는 둘째 녀석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침 7시.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서야 의식이 돌아왔다. 둘째 놈에게 정말 미안20 하고,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2주 동안 중환자실 앞을 지키며, 아이의 상태를 의사 선생님에게 매일 전달받았다. 그리고 하루 2번, 10분 동안만 둘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머리에 감겨있는 붕대, 계속해서 흐르는 2살짜리의 눈물, 모든 것이 내 탓이고 내 잘못 같아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졌다. 

한 달 가량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못난 나 때문에 모든 가족이 고생이 정말 많은 것 같았다. 둘째 녀석의 입원 기간 동안 첫째를 돌봐주신 친정 엄마와 아빠, 그리고 첫째 녀석, 투덜댈 곳이라고 남편 밖 에 없었던, 아이, 아빠, 가족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쌍둥이의 행동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사소하게 넘어지고, 뛰어다니는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뛰어놀고 넘어지면서 커가는 게 당연한 아이들이지만, 쌍둥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나는 심하게 염려할 수 밖에 없었다. 쌍둥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생긴 트라우마. 앞으로의 육아와 아이들의 생활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걱정되었다. 

관심조차 없었던 혈우재단 사람들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둘째 녀석의 치료가 안정되면서, 혈우재단의 교육과 사업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힘들고 피곤하지만, 재단의 행사나 교육이 있으면 쌍둥이와 남편과 함께 빠짐없이 참석하고,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경험담을 나누고, 대처방법도 같이 고민해 나가기 시작했다.

혈우병에 대한 배경지식이 점점 늘어났고, 아이들의 육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왜 진작 참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되었다. 지난 30여년을 혈우 환우의 누나로 살아오면서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 는데, 여전히 공부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이제 쌍둥이들도 자랐다. 

이제 쌍둥이들도 자랐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재단과 환우들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며, 우리가 나 눈 경험들이 지금의 환우들과 새롭게 태어날 혈우 환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 빠르게 완치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우리나라, 아니 모든 나라의 혈우병 환우들이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