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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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김라엘 환우 엄마(김회정 님) 편 관리자 ㅣ 2021-12-10 09:28 ㅣ 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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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양육 수기 (코헴지 182호 2021.11/12월호 16-17p 게재) 사진 등은 코헴지 본문 참조 좌충우돌 환우 엄마의 초등학교 입학준비 수기 김라엘 환우 엄마 편 안녕하세요. 김라엘 환우 엄마 김회정입니다. 저는 아들과 함께한 초등학교 입학준비 수기를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오전 8시. 아들의 등교를 준비하다보면, 매일같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하죠. 이미 난장판이 된 거실과 주방을 복구하다 ‘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레고블럭을 제대로 밟고야 맙니다. 내 몸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비명을 제대로 지를 새도 없이, “엄마! 오늘은 꼭 짜장면 먹고 싶어.”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아들의 주문부터 메모합니다. 여느 집과 다름없는 등교 풍경으로 아침은 시작됩니다. 환우 엄마인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라는 자책은 진작에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강하다.’는 문구를 완벽히 실현시켰기 때문은 아니구요. 그동안 걸어왔던 힘든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고 이제는 따스한 봄과 같은 희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첫째 라엘이를 만나기 위한 최종준비였던 출산 전 정밀검사는, 엄마, 아빠로 하여금 새 생명이 주는 축복과 환희를 일순간에 공포로 바뀌게 했었죠. 아직 두 팔에 아이를 안아 보기도 전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제왕절개, 소아 중환자실로 가는 인큐베이터 속의 아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 가느다란 팔다리와 달리 무척이나 부풀어 오른 배, 주사기로 우유를 먹던 라엘이는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왔습니다. 수술하기엔 아직 어리기만 한 아들은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소변 줄을 달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기저귀를 두 개씩 하고 여름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씩 붓기가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이젠 수술을 견딜 수 있겠다고 해서 잠시 안도하기도 했지만, 그 후 수술대에 오르내리기를 몇 번. 기능을 잃어버린 신장 하나를 떼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시련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불려간 진료실, 의사 선생님은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혈액이 잘 응고되지 않아 수술 중 수혈을 진행하였고, 소아암센터에 혈액검사를 할 수 있게 접수해드릴게요.”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검사를 했었는데, 아직도 뭔가가 더 남았단 말인가. 그리고 조우한 혈우병, 고등 학교 생물책에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배운 이래, 염색체 ‘X’ 와 ‘Y’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C형 혈우병’은 유전적인 대물림이 없이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었으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한국혈우재단과 한국코헴회는 혈우병이라는 막막함 가운데 표류하기만 하던 우리 가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병원에서 만난 다른 ‘A’, ‘B’형 환우들처럼 당장에 큰 출혈 증상이 있어 즉시 응고제제 주사를 맞아야만하는 중증은 아니었습니 다. 정기검사 시 추가로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것 외에는 그저 일상생활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옆구리와 아랫배에 있는 수술자국들을 내보이며 너스레를 떠는 아들이 한없이 예쁘기만 했구요. 수긍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누구나 연약한 어린아이가 되고 마네요. 어느덧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해 비대면 수업을 했고 아침식사를 마치면 식탁은 늘 학교 책상으로 변신했죠. 선생님의 얼굴은 오직 모니터로만 바라볼 수 있었고요. 매일같이 나가서 뛰어놀고 싶어하는 천방지축 8살짜리 아이를 붙잡아 두기 위해 화상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매일같이 동석하다시피 했습니다. 엄마가 아니라 제가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초등학교에 다시 다니게 된 기 분이었습니다. 1년 뒤, 뒤늦게 열린 대면 입학식. 아들을 학교 강당으로 들여보낸 후 무사히 커준 아들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수업 출석을 두고 치러야했던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학교에 제대로 다니게 된 사실이 매우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부쩍 자기 생각들을 내어놓곤 하였습니다. “저는 신발을 정리하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될 거예요.” 오직 신발을 정리하기 위한 로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다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커가는 아들의 장래희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응원하는 마음도 같이 커져 갔죠. 그러나 정리를 제 때 안 해서 산더미같이 쌓인 아들의 책 더미를 뒤지고 있는 지금, 그 로봇은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은 잠시나마 현실을 무디게도 하지만, 이내 찾아오는 현실체감의 시간. 학교운동장을 달리다 크게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했습니 다. 여러 바늘을 꿰매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달씩이나 잘 아물지 않는 피맺힌 상처를 매일 보면 착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학교 모래밭을 여기저기 파헤치고, 학교 텃밭에 나가 옥수수를 심질 않나, 운동장 놀이터에 매달린 그네를 쌩쌩 타느라 하루가 바쁘기만 하네요. 언제든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우리 아들은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 나는 굳게 믿습니다. 오늘도 쑥쑥 자라고 있는 아들을 통해 온 가족이 존중과 배려를 배우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닫는 말. 사랑하는 라엘이에게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 부족했던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어서 고마워! 초등학교 입학 후 시작된 라엘이의 ‘어머니!’ 라는 호칭에 이 엄마는 마치 조선시대처럼 한복이라도 입어야 하는건지 문득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라엘이가 알아주었으면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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