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조oo 환우

안녕하세요, 환우 여러분. 저는 올해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29살 청년이구요. 위 질문에 대한 저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100% 만족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비(非)환우들도 마찬가지다’ 입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재밌을 시절에 또래들처럼 축구,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관절(발목, 무릎, 어깨 등)을 다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똑같이 놀았는데 친구들은 멀쩡하고 저는 그렇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지금에서야 몸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주변의 시선이 너무 신경쓰여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스스로 거리를 뒀고 자연스레 오해가 생기고 조금씩 멀어졌던것 같습니다. 

‘나는 혈우병이니까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재미없고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 모든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학급별로 인근 청소활동을 나갔습니다. 한 친구가 맨 뒤에서 혼자 쓰레기를 줍고 있던 저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너는 왜 맨날 체육시간에 혼자 앉아 있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참 막막했습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뒤에서 묵묵히 남들이 놓친 것을 줍는 걸 보니 마음씨가 따뜻한 것 같다’라는 말에 저는 대답도 못 한 채 상황은 끝나버렸지만 이 한마디가 자기 연민과 피해 의식에 빠진 제가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얻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창피했던 제가 용기를 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급 반장, 대학교 총학생회장도 해봤습니다. 누구처럼 돈이 많거나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있게 제 생각과 행동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첫 직장인 광고대행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며 잦은 야근과 고된 스케줄에도 예방주사를 맞으며 독하게 다녔습니다.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었고 노력하면 남들과 다를 건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혹은 ‘난 남들이 아픈 거 다 아니까 빠질래’ 마냥 이러고 가만히 있었다면 인생을 바꿔 놓을 만한 좋은 인연이나 기회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각자의 성격과 환경은 다르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얽매이지 않으면 누구도 본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불편함을 줄이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어요. 귀찮아서 아플 때만 주사맞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예방주사 맞는 습관을 통해 우리는 준비가 된 것이고 이 작은 노력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많아지더라구요. 우리가 응고인자가 부족하지 다른 것이 부족한가요?

끝으로, 이 글과는 상관없이 멋진 인생을 살고 있으실 환우님과 오늘도 환우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혈우재단과 코헴회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미지 코헴지 186호 20~21p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