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살아갑니다.

“자유를 찾아서 왔기 때문에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싶습니다.”

한국에 온지 햇수로 8년 째 말하는 억양에 조금 흔적이 남아있을 뿐 그가 사선(死線)을 넘은 새터민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 씨는 올해 만 27세의 미남으로 지난 2006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새터민이며 중증 혈우병A를 가지고 있는 혈우 환우이기도 하다. “첫 돌 전에 출혈이 있어서 작은 병원부터 큰 병원인 함경도 청진의 도 병원까지 다 가봤는데 작은 병원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는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야 ‘혈우병’으로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처방받지는 못하고 다만 물소 뿔이나 코뿔소 뿔을 갈아 먹으면 지혈효과가 있다고 지혈 효과가 있는 약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물소 뿔이라 해서 갈아서 먹은 기억이 있죠.”

혈우병으로 진단은 받았지만 쓸 수 있는 약이 없어 출혈이 되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던 그는 결국 어머니로부터 4번인가 수혈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사촌 형님은 제가 진단을 받은 후에야 돌아가신 원인이 혈우병이었음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북한의 혈우병 환자들은 자신이 병을 모르고 지낼 확률이 높겠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 씨가 전하는 북한의 혈우병의 현실은 ‘무지(無知)’ 그 자체였다. 외부세계에서는 북한 내의 혈우병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북한에서는 혈우병이나 혈우병의 치료제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니….

그에게 탈북의 이유를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었지만 ○○ 씨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독백을 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굶어죽기 싫어서 중국으로 갔습니다. 뭐라도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있겠거니 했죠.” 그렇지만 ‘탈북자’로 지내는 중국에서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훈춘 연길 위해 등에서 모두 4년가량을 지냈습니다. 어머니가 생활의 대부분을 책임졌지만 저도 몸이 괜찮으면 노래방 웨이터를 하기도 했죠. 하지만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불안한 도망자의 처지에서 병원에서의 치료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달리던 자전거에 애완견이 치었어요. 개 주인은 노발대발하면서 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내가 개 보다 못한가’하는 생각이요….”

자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침대 아래로 숨고 그렇게 아침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살았다’고 안도하면서 OO씨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다운 삶을 동경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국은 그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중국에 있으면서 방송을 통해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한국에서 사는 것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이 ‘자유’ 하나만 보고 온 것이어서 자유를 얻고 내 나라에서 내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았지요. 사실 어려움도 있었죠. 남한 사람들과의 언어 소통과 같은 미세한 부분이나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는 것들도 그렇고 또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있죠.”

그렇지만 어렵게 찾은 자유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간 것도 그렇고 지금 단체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연극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나라에서 지원해 주어 집도 있고 그 집에 TV 전기 난방 등 갖출 것은 다 갖춰놓고 사니 더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을 것 같아요. 물론 현실에 만족하고 주저앉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혈우병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 것도 한국에 오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OO 씨는 아직도 재단의원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처음 재단의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필주 씨 이 병 가지고 괴로워서 어떻게 사셨어요?’라고 물었는데 그 말 한 마디에 정말 울 뻔 했어요. 가까이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아시겠지만 남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좋았는지요. 또 처음 응고인자를 맞았을 때도 정말 놀랐어요. 주사를 맞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통증이 사르르 사라졌거든요. 무슨 마약인가 하고 생각했었죠.” 의료진으로부터 혈우병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 씨는 출혈이 되면 한 달씩 앓던 것이 2~3일이면 회복이 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 씨는 이미 두 편의 연극에 출연한 연극배우이기도 하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에서 제작하여 명동의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하였던 연극 ‘정명’과 ‘이중사연’에 배우로 직접 참여했던 것이다.

“대학 때까지는 연극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북한인권에 관련된 단체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되었고 또 일을 하면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기초훈련과 체력훈련을 받았는데 많이 힘들었죠. 예상했던 부위가 다 출혈이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출혈은 응고인자로 막고 제가 하고 싶을 일을 하니 그 열정으로 버틸 수 있었죠.”

그런 ○○ 씨가 요즘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아홉이 됩니다. 연극이 좋아 직업으로 할까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 고민 중에요. 하고는 싶지만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다’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경제라는 현실적민 문제도 있으니까요. 연극 할 때만큼은 정말 좋고 연극이 주는 매력도 있는데 단체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만족할지 업으로 찾아다니면서 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인권활동과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한다. ○○ 씨는 오랫동안 자유를 꿈꿨고 마침내 그 자유를 찾았다. 꼭 연극배우가 아니어도 ○○ 씨가 계속 꿈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열심히 그리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 꿈과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