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전공 후 대학에서 강의>

안녕하십니까. 서울에 살고 있는 50대 8인자 중증 환우입니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지만, 저는 몇 해 전까지

대학과 중고등학생 가정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지면을 통해 저의 경험과 느낀점

등을 여러 환우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이 글이 학업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중고생 환우들과 그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모두 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이 글을 보는 환우분들 가운데 아마 ‘수학’이라는 말만

듣고도 머리가 아파오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그런 어렵고 따분한 수학을 제 직업으로

삼아왔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에도 10년 가까이 대학원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수학 강의는 제 적성에 꽤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즘엔 대학들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의실들이 대부분 건물 5, 6층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가 1988년이

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출혈 때문에 무릎 관절이

아픈데, 마땅한 응고인자제제도 없고, 재단도 설립되기 전이었던 그때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렇게 거의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니,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대학에 사표를 내고 1년간

쉬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쉬게 된 것인 만큼, ‘이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말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누군가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수학을 다시 가르치게 됨>

하루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친구만 있는 게 아니라 친구의 고등학생 조카도 있었습니다.

친구는 다짜고짜 저에게 조카를 소개시켜주며 수학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얘가 내 조카인데, 내일이

학교 시험이래. 수학 조금만 가르쳐줘” 저는 그날 엉겁결에 친구 조카에게 2시간 정도 수학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 부탁이니, 성의껏 가르치긴 했다만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수학에

대한 기초가 거의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조카가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 이후로 여러 통의 전화가 벨을 울렸습니다. 모두 친구와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 학부모님들의

전화였습니다. 자기 아이들에게도 수학 좀 지도해달라는 부모님들의 요청에, 그렇게 저는 다시 수학을 가르치는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수학은 학교수업과 복습이 중요>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동안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라면 수학에

흥미도 없고 성적도 낮았던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든 순간이라면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출혈로 몸이 아플 때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수포자’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정말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의 고민도 덩달

아 깊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습니다.

수학을 공부할 때 명심해야 할 두 가지는 바로 ‘학교수업’과 ‘복습’입니다. 학교 수업을 잘 듣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어떠한 시험 문제도 결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원과 자습보다 학교

수업을 성실하게 들어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복습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예습보다 중요한 게 복습입니다. 수학은 배운 당일이면 30분, 하루가 지나면

1시간을 복습해야 기억에 남습니다. 1주일만 지나도 배운 내용을 거의 다 까먹게 됩니다. 따라서 매일매일 배운

내용을 규칙적으로 복습해야만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복습을 귀찮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는

데, 하루 복습에 들이는 30분~1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목표를 이뤄나가는 데 비하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란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많은 친구들이 점수와 석차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런 것에 연연하면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당장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 틀리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시도도 하지 않고 풀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단 풀 수 있는 데까지는 스스로 풀어봐야 합니다. 수학은 편차가 심한 과목입니다.

이 말은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한 문제, 한 문제 끈기를 갖고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발전하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줘야 합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입니다.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자녀를 타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격려를 함으로써 아이가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공부에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또한 자가주사를 익혀 자녀가 병원에 왕래하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잘 하는 것을 선택하길>

끝으로, 입시와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어린 환우분들게 조언을 드리려 합니다. 취업도 어렵고, 입시도

어렵습니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보다 현실적인 안목을 갖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보다 ‘잘 하는 것’을 보고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시기 바랍니다. 눈을 조금만 낮추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곳,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혈우 환자라는 것을, 몸이 편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생활에 제약이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삶을 바라보면, 생각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환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입시와 취업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젊은 환우분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

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