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렇게 혈우재단 소식지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부디 저의 글이 환우, 가족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2016년을 뒤로 하고 어느덧 2017년 새해가 시작되어 봄을 준비하고 있고,

마냥 20대의 젊은 청춘일 것으로만 알았던 제 나이도 어느덧 40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혈우병이라는 병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만 접했었지, 제게 그런 병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여느 평범한 청년들처럼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봄에 갑자기 왼쪽 무릎이 아프더니 피가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 부딪혔나?’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증상이 자꾸 이어지다 보니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바로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일단 MRI 검사를 하고 입원을

하여 관절경 수술까지 받았습니다만 수술 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검사까지 받아보게 되었

는데, 그 결과 혈우병A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 30대 중반이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었습니다. 머리가 멍해져서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요. 당시 운영하고 있던

의류매장의 매출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고 다시 회복하기도 힘든 상태였습니다. 결국 저는 매장 문을 닫게

되었고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찾아왔습니다.

수술 받은 다리가 다시 걷게 되기까지 재활 과정도 힘들었고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힘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다 잡고 현실을 인정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최대한 마음을 바꿔보고자 노력했고, 더 열심히 살려는 각오로 아무리 힘들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힘든 티도 내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근심과 걱정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몸도 어느 정도 다시 활동을 시작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습니다. 한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저는 다시금 일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작은

의류매장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저를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매장을 오픈한 지 고작 2개월 여 만에 출근길에 넘어져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것이었습니다. 다시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랐는데, 그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왜 나한테만 계속 이런 시련이 생기는 걸까’ 수술을 하고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또 다시 재활에 투자했습니다.

한여름철 병원을 오고가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그러다 우연히 혈우재단 부산의원 게시판에 걸려 있는 경희사이버대학교 입학 관련 홍보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한창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20대 초반. 그 시절 저는 학비가 없어서 대학에 들어간 지 1년도

안 되어서 자퇴를 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대학에서 공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최근까지

경제적인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6월부터 혈우재단과 경희사이버대학교가 산학협동 협약을 맺게 되어 재단에 등록된

환우들에게는 학비가 전액 지원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은 저에게 정말 큰 용기가

되었고, 바로 대학 공부에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2016년 2학기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 신입생으로 입학을 하였고, 생업과 재활, 공부를 병행하는

바쁜 삶 속에서도 무사히 한 학기를 마쳤습니다. 주변에서는 바쁘게 사는 저의 모습을 보고 너무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이 보내왔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다시 문을 열게 된 작은 의류매장은 저의 생업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였

고, 건강도 중요하여 재활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학기를 마치고 올해 1월에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나름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확인해봤는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전과목에서 A 이상의 성적을 받아 평점 4.3점

만점에 4.15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새벽잠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한다고

공부를 했지만,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보람된 한 학기를 마친 저는 요즘 동계 계절학기를 듣고 있습니다. 요즘은 공부를 하는 게 힘들거나

귀찮지 않습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수업이 없는 날이면 오히려 허전할 정도입니다.

이번에 얻은 자신감으로 또 하나의 큰 목표를 세우고자 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전과목 A학점이라는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습니다. 졸업을 하면

한국어 정식 교원 2급 자격증이 나오는데, 이는 가까운 미래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살게 하는

값진 자격증이 될 것 같습니다.

혈우재단과 경희사이버대학교는 아주 좋은 취지로 산학협약을 맺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기관 모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뜻 깊은 마음이 있었기에 저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 지위와 나이, 경제적 여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으니, 다른 환우분들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용기

내어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저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학업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많은 도움 주시는 부산의원 관계자분들과 학업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경희사이버대학교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남들과 다르다고 좌절하거나 불평 불만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환우님들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