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직장생활과 깨달음

저는 지난 6월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현재는 재활을 하면서 하반기 공채 취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취업은 아닙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에 중소규모의 IT기업에서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그리고 수술 후 다시 취업을 준비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환우들은 서서 일하기보다는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찾게 마련입니다. 할 수 있다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이 좋기 때문이지요. 부모님들께서도 되도록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길 원하실 겁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3년간 일한 바로는 오랫동안 앉아서 근무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IT업종 특성상 야근과 철야 근무가 많고 주말 출근도 많다보니 몸 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고 교류가 없다보니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요즘처럼 혈우병 약품과 지원도 많아진 때라면 신체적으로 편한 일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리와 가정에서의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아파할 수 없어, 빠른 시기에 자가관리를 시작하는 게 좋아

우리 환우들이 학교생활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려 야외활동을 하든,

이러한 모든 활동들을 즐겁고 건강하게 하려면 자가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자가주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집에 약이 있어도 스스로 주사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주사를 못 하셨습니다. 그때 제게 주사를 놔주시던 분은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던

간호조무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 좋아했던 저는 아픈 걸 참아가면서

놀기 일쑤였습니다.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나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다 놀고 와서 아프다고 하고,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오시면 주사를 맞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오지 않는 날에 출혈이 나면 고통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하루는 부모님께서 저를 두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필 그날 통증이 오고 말았고, 저는 고민 끝에 큰 결심을 했습니다.

바로 직접 주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습니다. 자가주사는 처음이었지만,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하시던 걸 어깨너머로 따라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자가주사는 제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전까지는 수학여행이란 걸 가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수학여행도 가보고, 병원에도 혼자 가고, 환우들끼리의 모임도 자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내며 간호조무사 선생님께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었고, 부모님의 부담감도 덜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주사만 스스로 놓을 수 있게 된 것뿐인데, 환자 본인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저는 어린 환우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들께서 제 사례를 통해 출혈로 인한 통증보다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아프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아픔을 이겨내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입장에서 자녀가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아픈 건 부모님이

아닙니다. 아픈 건 자녀의 몫입니다. 그러고 싶겠지만, 부모는 결코 대신 아파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빠른 시기에 아이가 스스로 아픔을 관리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유지요법을 비롯한

자가관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자가관리를 빨리 시작할수록 더 많은 기회를 더 빨리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께서 과잉보호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파심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게 지나쳐서 아이가 하는 모든 일에 섣불리 “안 돼”, “위험해”, “하지 마” 등의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안 된다면 왜 안 되고, 위험하다면 뭐가 어떻게 위험한지를 설명하면서 아이의 의사와 절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가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관리는 아픔을 이겨내는 것에서도 중요하지만, 지금보다 혈우병 진료환경이 좋아졌을 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 좋은 약도 많아지고, 환우들의 생활범위도 넓어졌듯이,

언젠가는 혈우병 완치의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날이 오면 더 이상 출혈 때문에 아파하는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환자 개인마다 관절 상태라든지 운동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를 것입니다.

평소에 관리를 잘 한 사람은 원래 건강한 사람들 못지않게 마음대로 관절을 사용할 수 있고,

관리에 소홀한 사람은 출혈은 없지만, 여전히 불편하게 생활할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들께서 희망을 잃지 마시고 자녀의 건강을 위해 관리에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아픔보다 중요한 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혈우병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하시고,

아이가 자라는 걸 바라보시면서 자가관리의 주도권을 환우 자녀 본인에게 쥐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삶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를, 아픈 건 무기가 아니야

진로와 취업을 놓고 고민하는 10~20대 환우들은 지금부터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군대를 못 가서 주어지는 2년이라는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저는 그 2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2년은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자기계발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취업을 생각하신다면 영어나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혹시나 아프다는 걸 무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얼른 생각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사회는 집과 다릅니다. 집에서는 아프다고 말하면 가족들이 이해해주고 걱정해줬을지 몰라도,

직장에서는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프다는 이유로 당일 아침이나 하루 전에 갑자기 결근을

하겠다고 말하는, 약한 모습은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업무능력이 아픔을 변호해주지는 않습니다.

의지의 차이입니다.

저 또한 현재 취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성실히 근무함으로써,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제 계획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재활과 관리하면서 계획을 이루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관리에 힘쓰시면서 건강하게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