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22개월된 아이 엄마입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후 아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다 6년 만에 출산을 하였습니다. 아기를 갖는 것도 어려웠지만

전치태반으로 임신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26주부터 출혈이 시작되어서 병원에서 출산 때까지

안정을 취해야 했고 임신 후기에는 출혈빈도가 높아져 부득이하게 33주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감사하게도 생후 6개월이 지나자 다른 만삭아들의 발달수준을

따라잡았다는 좋은 소식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8개월쯤 되었을 때 갈비뼈 아래쪽에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해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의뢰했는데, 정형외과적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아서 혈액종양내과로 가봤더니, 담당 선생님께서

아기의 혈액응고 수치가 낮은 편이니 추가로 다른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검사 결과 아기가 혈우병 8인자 중증이라고 말씀해주시면서 혈우재단을 안내해주셨습니다.

그 날 바로 혈우재단을 찾은 저희 부부는 혈우병이 무엇인지, 앞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왜 우리가 이곳에 와 있는지,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왜 이런 큰 일이 벌어진 건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관절출혈이 일어나면 유지요법을 해야 한다는 말에 영원히 관절출혈이 일어나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작은 아기에게 주사를 놓는다니.... 상상할 수도,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활동량이 많아지는 남자아기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 주의 깊게 관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왼쪽 허벅지가 부어있는 것을 보고 혈우재단에 와서 검사를 해보니 근육출혈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주일간 반깁스를 하고 지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아이라고해서 피해갈 수는 없는 거구나. 이 상황을 피해갈 수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도와줘야

하는 거지?’ 그 때부터 재단에서 제공해주시는 부모교육에 참석하며 환우 부모에게 유용한 정보와

다른 환우 어머니들의 양육방법을 들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던

제 마음이 누그러들어갔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15개월이 조금 지났을 무렵, 감기로 인해 일주일 이상 열이 떨어지지 않아 걱정하던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경기를 해서 응급실에 갔더니 뇌출혈의 흔적이 보인다고 해서 입원을 하였습니다. 입원 후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 옆에서 정말 많이도 울고 애를 태웠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채혈을 하고 수액,

혈액 응고제제를 맞는 바람에 주사바늘만 봐도 울고 발버둥치는 아이..

나중에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지나가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이제는 유지요법을

시작해야 한다니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퇴원 후 혈우재단에서 주사를 맞을 때에는 큰 거부감 없이 잘 맞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이에게 혈우재단이 병원과는 다른 분위기를 주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주사 놓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기린인형도 보여주시고 대화도 많이 해주시는

간호사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혈관을 잘 찾아 주사를 잘 놔주시는 선생님들의 숙련도도 빠질 수 없습니다.

사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유지요법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곳의 간호사 선생님들은 혈관을

잘 못 찾았습니다. 몸 여러 군데를 바늘로 찔려서 힘들어 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엄마인 저마저

혈관주사가 너무나 무섭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응급실과 병동에서 혈액응고제제를 다뤄 본적이 없는 선생님들이 저에게 사용방법을 알려달라고 할 때

사용 순서를 모르고 있었던 저는 약 섞는 방법이라도 정확히 알고, 어떻게 주사를 놓는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 혈우재단에 자가주사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교육 후 간호사선생님들께서 이제 직접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셔서 17개월부터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재단에서 주사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주사 맞는 아이를 뒤에서 안고 달래면서 보는 것과 달리

제가 아이 앞에서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는다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혈관을 잘못 찾아서 다른 쪽에

다시 주사바늘을 찔러야 할 때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얼굴은 불덩이

같았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포기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시면서, 잘하고 계신다며 응원해주시고 돌발상황 때는 침착하게 설명해주시는 재단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은 집에서 유지요법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말이나 야간, 휴일에 아이가 크게 넘어지거나 출혈이 있기라도 하면 그 상황이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럽기까지 했는데,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아이가 다치더라도 전처럼 당황하지 않고

달래가며 주사를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가 엄마의 서툰

손길에도 잘 참고 견뎌주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남들과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것

특별한 아이를 평범한 엄마가 키운다는 것....

아직도 불안하고 걱정이 많지만, 저는 재단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을 통해 육아와 관련하여 유익한 강의를

듣고 다른 환우어머니들의 조언을 들으며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교육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서는 언제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 자리에 더 많은 부모님들이 참석해주시면 함께

더 큰 힘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재단에서 근거리 지역의 환우가족들이 만나서 교류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환우, 가족 분들을 만나다보면 함께 정보도 교환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배려해주시는 혈우재단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