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하지만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안녕하세요. 저는 한 초등학생 환우의 엄마입니다. 제가 이렇게 코헴지를 통해 드리는 글이 제 아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환우 어린이를 두고 있는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며, 부족한 글이지만 환우, 가족 여러분들께서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는 올해 8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1학년 2학기를 시작한 어린 아이지만 친구들보다 체격이 조금 커서 그런지, 걷는 모습이나 행동이 어른스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람한 외모와 달리 속마음은 정말 섬세한 아이입니다. 가끔은 남자 친구들보다 여자 친구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감동시킬 줄 아는 매력이 있습니다. 기억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한 번 갔던 곳은 꼼꼼하게 다 기억합니다. 여린 감수성까지 지니고 있어서 창작 동화를 들을 때면 이따금, 슬쩍 눈물을 닦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쁜 마음을 지녔지만 재단의원이나 집 근처 병원에 들러 규칙적으로 주사 맞는 것도 거르지 않는 씩씩한 사나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지금처럼 차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애는 심한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출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의원에 가는 날이면 집 현관문을 나와 의원 문을 열기까지 한바탕 기싸움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늘어만 가는 걱정과, 지쳐가는 몸,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가 뒤섞였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맞닥뜨린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고 있을 때 혈우재단 복지사 선생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복지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우리 아이에게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심리교육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셨고, 저희가 온전히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복지사 선생님은 재단에서 저희 아이에게 6개월분의 심리교육치료비를 2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소식이었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 고생했던 시간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그 이후 우리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로 찾아가 심리교육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은 아이가 받았지만, 저 또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신체적 발달과 정서적 발달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 선생님은 아이의 몸이 쑥쑥 자라듯이 마음의 크기도 균형 있게 자랄 수 있도록 두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저는 아이의 출혈 관리와 신체적 안정, 건강에만 신경 써오느라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서툴렀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가 혈우 환우인지라 이러한 접근이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없고, 다른 환우 어머님들도 그럴 수 있겠지만 아이의 성장에는 신체와 마음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육이 끝나면 눈가가 촉촉해진 채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이의 출혈에만 신경 써서 겉으로 보이는 건강 상태로 내 마음의 위안을 찾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천방지축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낯선 곳과 선생님 앞으로 데려가 교육 과정을 하나씩 지켜볼 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집단그룹치료를 시도해보기도 하였지만 교육실 밖 창문으로 당황하는 빛이 역력한 아들의 표정을 보고는 그룹치료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몇 번 담당 선생님이 바뀌기도 하고,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웠지만 ADHD(attention deficit,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전문 의사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엄마가 마음의 시간을 갖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차분히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주면서도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놓은 행복씨앗은 가꿔주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모두 상담을 받고 아이도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ADHD 아동의 특성을 고려하여,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혈우병 관리도 여전히 중요했기에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습니다. 남편은 약을 타러 갈 때마다 의원에 동행해줬고 이외에도 치료 프로그램에 맞게 최소한의 약속들을 잊지 않고 지켜줬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노력의 시간들은 조금씩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리교육 선생님으로부터 희망의 말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OO이는 다른 아이들을 앞질러 갈 수 잇을 만큼 큰 가능성이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한가득 희망을 품고 저희 가족들 모두 성실한 시간들을 보내온 결과 올해 초 저희 아이는 늠름한 모습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나의 멋진 아들아>

저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제게 코헴지에 자신의 글이 나오냐고 물어보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는 지금이 소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이의 혈우병 관리는 물론 마음의 치유까지 도와준 재단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슬기롭게 저희를 도와주시는 재단 복지사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

나의 멋진 아들 OO아! 몸이 아플 때도 투정부리지 않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참고 견뎌줘서 고마워... 엄마도 그런 널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어. 너의 ‘폭풍에너지’가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멋진 날들을 만들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다! 자신 있다!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