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군대에 가는 2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Q.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셨는데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못해서 ‘다른 것이라도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에 일본어를 열심히 했는데

다행히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입학 준비를 하다가 유학의 기회가 생겨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Q. 일본 유학 중에는 어떻게 치료를 했나요?

치료를 잘 받은 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한데 저는 학생비자가 있었습니다.

먼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진단서를 받고 동사무소에 등록을 하면 치료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도시라고는 하지만 대학병원이 있어서 혈우병 치료를 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약에 대한 제한은 없었지만 예방요법을 하지는 않고 필요할 때마다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 때부터 예방요법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Q. 여행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죠?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면서 여행이라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구직광고를 보고 일본 전문 여행사에 이력서를 내고 일을 하게 되었죠.

그 때 취업한 여행사는 일본 내에서도 대마도를 주력으로 했는데, 주로 한국에서 나가는 여행객을 안내하는 가이

드 일을 하고, 가끔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Q. 지금은 내근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가이드로 나갈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22살 때 처음 취업을 해서 벌써 경력 8년차입니다.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거나 단순한 일을 하고 있을 때였

죠. 가이드로 나가는 것이 수입 면에서는 내근직보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술도 많이 사줬죠.

그리고 가이드로 일하는 것에 이점도 있다고 봅니다. 여행을 좋아하면 못 가본 여행도 갈 수 있고,

일본의 문화나 여러 가지 부분을 한국 분들께 설명하고 전파할 수 있죠. 내근직도 나름 장점이 있는데,

많은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한 선박, 항공회사, 일본 현지 호텔, 그쪽 여행업 관계자들을 통해서 인맥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가이드를 할 때 등산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 무리가 많이 왔어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 어르신들을 인솔하려다 보니 통제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행업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고 해서 내근직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하는 일은 어떤 업무인가요?

관광 상품 개발, 판매, 홍보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가이드로 나갈 때도 있는데,

‘차량 가이드’라고 해서 4~6명의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제가 직접 운전하면서 안내하는 일을 하죠.

차량 가이드는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아요. 요즘 패키지 상품은 많은 장소를 가려다 보니

정작 제대로 설명을 듣거나 감상을 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차량 투어를 하게 되면,

제가 선택한 곳에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나중에 여행업을 그만 두게 되면 택시라도 해볼까 생각합니다. (웃음)

Q. 기억에 남는 고객은?

입사 2년 차쯤에 대만캠핑 상품의 가이드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셨던 분들이 “일반 관광이 아니라 휴양을 하러 왔으니 인솔만 조금 해주고 편하게 있어달라”고 해서

저도 몸을 맡기고 같이 간 아이들과 즐겁게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가셨던 분 중 저보다

10살 많은 분이 계셨는데 다녀온 후에도 자주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근직으로 전환한 다음에는 고객 대 가이드가 아닌 형동생으로 만나자고 해서 계속 형님이라 부르며 가

끔 만나고 있습니다.

Q. 반대로 다시는 만나기 싫은 고객도 있지 않나요?

가이드일 때 생긴 문제들은 많은 경우가 술과 관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이 낸 비용에 비해

너무 많은 ‘대접’을 받으려는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더군요. 예를 들면 10 몇 만원 짜리 여행상품인데 100만

원 짜리 대우를  요구하는 격이죠. 호텔이나 식사 등등…. 별별 일들이 많았지만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웃음)

Q. 혈우 환우에게 여행업이 적당한 직업이라 생각하나요?

혈우 환우뿐만 아니라 비혈우인 환우들도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저는 ‘여행업에 몸을 담으려면

각오하고 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행업이 급여가 높지는 않거든요. 대신 여행하기가 좋고 인맥이 넓어지고,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는 데 좋은 것 등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격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내성적이었던 사람인데 1~2년이 지난 다음에는

외향적으로 변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직종이 여행업이라

생각합니다. 퇴근 후에도 잡일이 많아서 귀찮을 때가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환우들이

평생직장으로 삼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Q. 여행업에 종사하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합니까?

적어도 한 가지 외국어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꼭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면 되죠. 사실 업무에 사용되는 용어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언어적인 부분이 필요하지만, 꼭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원을 선발할 때는 언어보다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을 먼저 봅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업종이다 보니

성격이 더 중요하거든요.

Q. 평소에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혈우 환우에게 예방은 정말 필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저도 스물다섯 살이 넘어서 예방을 시작했는데, 흔히들 스물다섯까지 신체 활동이 활발해지다가

그 다음부터는 점점 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30세인데 왜 진작 예방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를 합니다.

요즘은 일주일에 세 번씩 꾸준히 아침에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많은 환우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주사 맞는 것을 꺼려하는데, 일반인처럼 살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남들에게 주사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것은 당뇨병 환자가 남들 앞에서 인슐린 주사 맞는 것을 꺼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Q. 어렸을 때는 어떠했는지요?

저희가 어렸을 때에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주사를 놔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주사를 배우셨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제가 직접 주사를 했죠. 저희 어머니도 저희 형제를 비혈우인 처럼 키우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에 형님과 저를 버스에 태워서 속초 외가에 보내시곤 했죠.

그 때 버스 앞뒤 자리에 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셨어요. 혹시 휴게소에서 다시 타지 않았는데,

아이가 작으니까 못 알아보고 버스가 출발할 수도 있다고 말이죠.

사춘기 때에는 한두 번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또 집을 나간적도 있지만 밖에서 한나절을 보낸 다음에

저녁에 집에 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사춘기를

수월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Q. 20대 환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활동도 할 수 있는 몸으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 받는 것은 정말 큰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군에 가는 2년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정말 알뜰하게, 그 시간을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취업을 빨리

할 수도 있고 또 해외연수를 할 수도 있으니, 허송세월하지 말고 알차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또 혈우병에 대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혈우병 때문에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깊게 쌓아두지 말고 안되는 것은 쿨하게 잊고 다음

대안을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꿈은 굉장히 커요. 평범하게 살고 싶거든요. 모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평범하게 일반적으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는 것, 그리고 40대 중반 정도 되면 제 여행사를

하나 가져보고 싶습니다.

또 여력이 되면 혈우환우를 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낮에는 관광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치료나 스트레칭 등의 교육을 받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