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이 그 가치에 상응하는 주목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책은 과대 평가되고 어떤 책은 과소 평가된다. 평가할 가치가 있음에도 아예 평가 대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는 내가 한동안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그때의 시점으로) 대통령이 두번이나 완독하고 참모진에게 일독을 권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자기 치열성'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일 것 이라고 주저없이 생각했다.

김훈이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을 '문학동네' 창간호에 연재하며 기자에서 작가로 새출발한 것은 마흔일곱이 되어서였다. 흔이 '늙다리 신인'의 등장인 셈인데 그만큼 작품에 대한 치열한 몰입이 없으면 안되는 절박함이 내재됐을 것이다. 그 '치열성'이 그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세웠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테다.

작품은 이순신이 옥문을 나선 정유년 4월 1일. 이른바 백의종군의 길부터 그렇게 '무내용'의 죽음을 거부하고 불멸의 죽음을 완성한 노량해전 까지의 내용을 이순신이 자기에 대하여 말하는 자기서술과 작가입장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섞어가면 전개한다.

동물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좀처럼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야수들조차 생존을 위한 최소의 살육을 벌일 뿐이다.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배가 불러도 곳간을 더 채우려 호전적인 침략 전쟁을 벌이기 일수다. 21세기의 호전국은 미국(아들 부시 정권)이다. 이번 세기 들어서만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시리아, 이란에 으름장을 놓는 중이다. 또한 우리 생존이 걸려있는 한반도의 반쪽에 추임새를 놓고 있으니 당시의 조.명의 동체에 심사가 뒤틀린 일본국의 호전성을 본다.

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망나니 짓', 바로 그것이었다. 명의 원정길에 조선 땅을 거쳐 가겠다는데, 당시의 조.명의 역학관계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안으로는 겁많고 눈물이 많고 의심이 많아 사람 죽이기를 서슴치않은 용렬한 임금에다 날이면 날마다 당파 싸움에 날을 지새는 조정 대신들. 침략 전쟁에서 왜군이 백성들에게 행해진 도륙과 살육은 이순신의 무력감을 대변한다. 또한 히데요시가 죽고 전쟁의 말미에 침략자와의 평화조약이라는 구실로 명과 일본이 조약을 시도할 때 이 책에 면면히 흐르는 무의미와 무내용을 공은 혁파하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난중일기>란 무엇인가. 충무공이 쓴 임진란 7년의 일기체 기록이다. 비범한 문장, 곡직한 기사, 민중과 더불어 함께 숨쉰 보배로운 기록임을 누가 모르랴. 나는 <난중일기>를 '위대한 분노의 서'라고 읽었다. 전쟁이 끝니기 전에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한 사내의 기록이기에 감동적어었던 것이다. '위대한 분노의 서'라 했거니와 <칼의 노래> 세계도 다를바 없다.

공에게 전쟁이란 '한 자루의 칼을 벼르는 일'이나 마찬가지 였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쥐어줄 수 있는 칼. 공은 보검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공은 모든이의 일상에서 쓰임이 되는 무쇠 칼을 원했던 것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누구라도 그 칼을 잡고, 무엇을 썰거나 간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칼(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전쟁을 수행했다.

<칼의 노래>에서 공(작가)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궁국적으로 무었이었을까. 존 레넌이 작곡하고 비틀즈가 부른 '이매진'의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 종교마저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상상해봐....그대//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봐/ 탐욕도 필요없고 굶주림도 없고/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한다고 상상해봐..."

평화를 위해서라면 국가, 종교, 소유, 이데올로기, 신념 따위를 걷어치우자는 것이다. 이제는 한참 지난 어느 대선 때 한 후보가 이 곡을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을때의 전율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 책에서 전율도 그때와 다름없었다.

나라 안밖은 여전이 불화로 가득하다. 평화의 치열함이 상상력이 부족한 걸까, 그것만으론 안 되는 걸까. 그러나 어쩌랴. 치열성과 상상마저 포기할 수는 없으니.

더 이상 이 책에 대해서 뭐라 말하는 것은 아마 사족의 사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