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계절의 바뀜이 올해는 빨리 온 것 같습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환절기의 감기 몸살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기를 쓰고 자기 몸을 보존 할려다 매번 실패하는 나라는 놈과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서 물끄러미 쳐다 본 '유민 아빠'의 이유있는 자기 파괴적 몸은 서로 비교 불가능 할 것 입니다. 아마 40대의 역사와 일상이 만들어낸 비슷한 삶의 주름을 만들어 온 동질감이 비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광장의 몸부림과 두 환우의 사별에서 '생명의 상실은 회복될 수 없다'란 문구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오늘은 '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게시판에 글을 께작거리면서 꼭 쓰고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기는 아픔을 나누기도 하고,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며 나처럼 손이 가는되로 글도 써 본직한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다양성면에서 훌륭한 장입니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식을 낳은 것과 책을 남기는 것'이라고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지만, 불멸의 고전이 과연 죽음을 극복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책은 나로 하여금 지루한 일상을 잘 극복해준 다는 것! 그것이 좋은 책의 매력입니다.

사람에게도 고유한 매력이 있듯 사물에도 매력이 있습니다. 책에서 매력을 본 것은 어쩌면 운명일까 싶습니다. 나를 일러 어떤 친구는 "책이 사람 만든 케이스"라고 합니다. 병이 아니였으면 그야말로 흥건(?)지게 살았을 법도 합니다. 늦은 밤, 귀뚜라미 소리인지 뭔지를 들으며 책상앞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때만되면 늘어놓던 잔소리도 사라져 아쉽습니다. 최신 정보통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책은 부차적인 정보 취득원일지 모름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자료가 쏟아저나오는데 굳이 책장부터 뒤적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심도 있는 정보를 구체화하는 데 아직 책보다 더 뛰어난 지식의 도구는 없을 뿐더러 책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마지막 보루요 요새같아서 입니다. 이성보다 광기가 난장하는 세상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인간 구실을 하려면 책을 붙들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거창한 화두를 꺼낸 건 아닐지 쑥스럽습니다.

퇴계 이황은 장인에게서 1만 권의 책을 물려받은 아버지 이식 덕분에 어려서부터 책에 둘러싸여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웠던 구양수의 삼다(다독, 다작, 다상량) 가운데 게걸스럽게 읽는 다독보다는 정독과 숙독을 더 중요히 여겼다 합니다. 얘긴즉슨 '일독'은 책(특히 문학작품)을 읽는 올비른 방식이 아닙니다. 나보코프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선택지는 '읽고 또 읽기' 이거나 '읽고, 읽고 또 읽기'여야 한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좋은 방법은 책에 대한 평가를 해 보는 것입니다. 서평(독후감)을 쓰면 적극적으로 책읽기를 하게 되고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능동적인 독서 행위를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천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재밌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책장을 덮을 때부터 한줄 한줄 사라지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 책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가물가물해지죠. 내 경험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서평을 쓰다보면 구체적인 문장은 사라질지언정 저자가 말하는 큰 틀은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독후감은 바다에 던지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작은 물고기는 놓치더라도 큰 녀석만큼은 잡아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존귀하게 됀다'고 했던가! 하지만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말처럼,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것은 사색입니다. 이 가을날 한 페이지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에 젖어보는 '사색적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 보시길 바람니다. 이는 우리가 광기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갈지 모를 때,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는 정신적 노끈이 되어줄 것입니다.

*보태기: 앞으로 그동안 끄적거렸던 3편의 서평을 올리겠습니다. 순서는 시의성을 반영해 '이순신이 없는 시대에 '이순신을 원하는' 마음이 모여 영화 <명량>의 흥행 돌풍이 이어지고 있어 김훈의 <칼의 노래>을 먼저 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이순신은 "충은 왕이 아닌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충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합니다. 충무공에겐 12척의 배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순신이 없습니다. 기자 출신 작가 김훈의 미려한 문체로 달래보시기 바람니다.

두번째는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요즘 얼음물 샤워(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널리 알려진, 알 수 없는 이유로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온몸이 위축되다 결국 호흡기 근육마저 경화돼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인 루게릭병(A.L.S)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의도한 바가 아니였지만 "내 병은 아무것도 아니다" 였습니다.

세번째는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과 함께 모국어로 쓰여진 가장 위대한 대하소설 조정래의 <태백산맥>입니다. 앞의 두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죽기전에 꼭 봐야겠습니다. 책으로만 보면 필생의 숙원입니다. <태백산맥>은 어느자리에서 재단 상무님과 대화 중, 읽지 않으셨지만 근작 <정글만리>는 읽었다는 이야기에 좋은 동기가 되었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정글만리>의 독서평을 답글로 우리가 보게 될련지...ㅋㅋㅋ

시기는 추석 연휴 끝 무렵부터 순차적으로 하겠습니다.

올 가을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풍성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