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군 가족

지난 3월 메이크어위시 재단(Make-A-Wish Foundation)은 한국혈우재단과 협조하여 재단에 등록된 혈우 환아를 대상으로 소원성취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적지 않은 우리 혈우가족들이 참여했는데요. 어떤 소원들인지 궁금하시지요. 이번 호부터 우리 가족들이 빌었던 소원이 이뤄지는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성취기관

Q.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한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8인자 환우 최은수의 엄마 이혜진입니다.

Q. 어떤 계기로 소원성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강동경희대학교 소아청소년과 박영실 교수님이 알려주셔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메이크 어 위시’가 무엇인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여러 사례를 자세하게 보았습니다. 제가 본 내용들을 가족들이 함께 보고 은수에게 “은수는 소원이 있어?”라고 물어보니 “소원이 뭐야?”라고 되묻는 은수를 보고는 이 프로그램에 신청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소원의 뜻을 설명해주니 “놀러 가고 싶어”라며 막연한 대답을 했어요. 은수 아빠와 고민하다 결국 신청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Q. 은수의 소원은 레고랜드 방문으로 결정됐는데요. 소원이 이뤄진 과정과 소원 성취의 과정을 얘기해 주세요.

레고랜드에 입장하기 전 메이크어위시 재단 측의 천사 누나들(봉사자들)과 위시파티를 했어요.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고, 케이크에 초도 꽂아 불고, 은수의 소원을 이루게 된 날을 축하하는 파티였죠.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라 걱정했는데 그동안 소원 찾기 여정을 함께 해 오면서 익숙해져서인지 삐쭉거리던 처음과는 다르게 매우 즐겁게 파티를 했어요.

레고랜드에 도착하여 메이크어위시 측에서 준비해주신 웨건을 타고 들어갔어요. 돌아다니는 내내 무릎에 무리가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 사실을 아시고는 웨건을 준비해주셨어요. 준비한 웨건을 타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입으로 “우와 우와”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은수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레고랜드에서 보았던 은수는 제가 알고 있던 은수가 아니었어요. 내 아들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얼굴을 보았어요. 그 모습에 은수 아빠와 저 모두 감동했고, 정말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어요. 이런 표정을 만들어준 메이크어위시 측에 매우 감사했고, 이런 표정이 나올 수도 있는 아이였는데 여태 너무 “하지마”만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서, 저와 아이 아빠는 만감이 교차했어요. 은수는 주로 스릴이 넘치는 놀이기구를 좋아했어요. 멀린 플라이 머신, 드래건 코스터, 멍키 클라임을 재미있어 했어요. 회전목마와 전망대를 타고 와서는 “시시해”라고 했지만, 표정만큼은 이미 매우 신난 어린이였어요. 메이크어위시 측에서 중간 중간 간식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은수와 아이들은 솜사탕만 계속 먹고 왔습니다.

신나게 놀고, 구경하다 보니 퇴장 안내 방송이 들리더군요. 나오면서 은수는 갖고 싶었던 베이블레이드 팽이 세트와 레고까지 선물 받고 재단 천사 누나들과 함께 퇴장한 후 천사 누나들이 준비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어요. 소원 찾기 여정 동안 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악한 후 파스타와 버거를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해 주셔서 즐거운 저녁 식사까지 함께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 동안엔 소원 찾기 여정 때와 레고랜드에서 찍은 사진을 앨범으로 꾸며서 은수에게 주셨어요. 은수가 돌아와서 며칠 동안을 끌어안고 자고 그랬답니다. 앨범을 펴보면서 “천사 누나들 보고 싶다”는 은수의 이야기를 동영상 편지로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리기까지 하였죠. 지금도 메이크어위시 재단에서 보내주신 인형, 팔찌는 은수의 침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책상에 올려 두고 보고 있어요.

Q. 국내외 여행을 많이 가시는 편인가요? 만약 여행가실 경우, 출혈 발생 등 응급사항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시는지요?

주로 주말에 이곳저곳을 다니는 편입니다. 어디든 장소를 정하기 전에 항상 습관처럼 계단이 많은지, 위험한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은수가 혈우병성 관절증이 있어서 조심해서 무릎을 사용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고려하는 것이 아이가 주사를 맞은 뒤 경과한 시간입니다. 주 3회 월, 수, 금으로 자가주사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요일이 취약하여 출발 요일과 그날의 활동량을 보고 추가 주사를 미리 하고 갑니다. 다친 후 빠른 대처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다치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리 주사하는 편입니다. 1박 이상 외박을 해야 할 때는 꼭 여분의 약과 주사용품을 따로 챙겨서 대비합니다. 여행 당일 미리 주사하는 경우 약을 챙기지 않고, 주사하지 않은 경우에만 챙겨갑니다.

Q. 레고랜드 외에 인상 깊었던 가족여행을 소개해 주세요.

동해시 천곡동에 천곡 황금박쥐 동굴이 기억에 남습니다. 5명의 식구가 여행을 떠났는데 막내가 어려 아기 띠로 업고 다니며 보았어요. 아이들이 박쥐에 빠져서 한동안 계속 박쥐 책을 보던 중 동해에 박쥐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에 방문하게 되었어요. 계단과 미끄러운 길 때문에 많이 망설였는데 은수아빠가 은수를 업고 다니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했을 때 찾아봤던 그것보다 많은 계단과 가파른 경사에 당황했고, 업고 다니기에는 바닥이 미끄러워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고, 그날은 당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은 부축하는 형태로 은수를 데리고 이동하였습니다. 동굴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고, 걷는 내내 진땀 나는 상황들이 여러 번 생겨서 고생했던 기억으로 인상 깊었던 가족여행입니다. 동굴은 피하세요! 

Q.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출혈이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다면 어떻게 조치하셨을까요?

욕실에서 미끄러지며 혀를 깨물어 출혈이 시작된 것을 계기로 은수의 혈우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많은 출혈에 당황하고 놀랐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때 다쳐서 은수의 혈우병과 다리가 구부러져 굳어져 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예방을 통해 차츰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일반적으로 출혈을 누르는 방법으로 지혈을 하였어요. 하지만 효과는 없었죠.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는 세 번의 큰 위험 상황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45° 정도의 주차장 내려가는 길에서 킥보드를 타고 가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다쳤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강동경희대병원에 전화해서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강원도 인제에서 강동경희대까지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습니다. 자가주사가 되지 않아서 소독만 하고 주사 및 후처리를 모두 병원에 의지하였습니다. 이 일로 박영실 교수님은 은수에게 킥보드 금지령을 내리셨어요.

두 번째는 그네에 부딪혀 정강이뼈가 골절된 날입니다. 그날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이아들을 보고 막내 기저귀 갈아주러 집으로 잠시 들어갔는데 큰애가 집으로 와서 은수가 그네에 부딪혀서 울고 있다고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막내를 급히 업고 내려간 놀이터에서 은수는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어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겁이 나면서 눈물부터 쏟아지려 했어요. 심호흡 세 번 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게 은수를 안고 집으로 들어와 상처 부위 얼음찜질을 하고, 강동경희대에서 가져온 부목을 대준 후 자가주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자가주사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죠. 그 후 강동경희대에 전화하여 응급실로 이동 후 입원하였습니다. 8월에 다친 은수는 그해 겨울 12월이 될 때까지 깁스하고 있어서 걷는 것도, 어린이집 등원도 모두 하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거나 빌려온 웨건에 앉아 아파트 한두 바퀴 휙 도는 움직임만 했어요.

마지막 세 번째는 타 병원에 감기로 진료하러 갔었는데 갑자기 은수가 무릎이 아프고 걸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 날이었습니다.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병원으로 진료하러 갔다가 집으로 오려고 하는데 은수가 오지 않고 갑자기 주저앉아버렸어요. ‘무릎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라는 말은 몇 번 들었던 일이 있는데, 직접 아프며 걸을 수 없다는 말은 처음 들어서 너무 당황했어요. 바로 아이를 안아서 의자에 앉게 한 뒤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도록 하고, 근처 상점에서 아이스팩을 빌려 아이 무릎에 대주고 강동경희대병원에 전화하였어요. 잠시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갈 예정이었으므로 여분의 약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고, 강원대학교병원에서 약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 전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가까운 곳이라도 주사를 맞지 않은 날은 여분의 주사를 챙기게 되었습니다.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원하여 계속 주사를 맞고 왔어요. 은수는 통증을 느끼기 전 2~3일 전에 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어요.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출혈의 증상이 보였던 날이 없었는데 결국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한 저를 원망하며 퇴원을 하였어요. 퇴원을 하고도 6개월가량 재활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를 들락날락하였어요. 그때 관찰하면서 많이 예민하게 되었고, 병원 한 곳의 의견보다 두 곳 이상에서 살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강동경희대병원을 다니면서 혈우재단에서도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Q. 아무래도 다칠 염려가 있다 보니 바깥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원만한 교우관계와 사회생활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이 부분은 숙제입니다. 놀이 할 때는 형을 따라 다니며 매우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만, 기본 성격이 내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형이 곁에 없으면 바로 혼자 놀기를 해요. 형과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말도 잘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혼자 있을 때는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산책로를 뱅뱅 도는 놀이만 해요. 어린이집 선생님과도 이 부분을 상의하였는데 필요한 것을 요구할 줄 아는 아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네요. 하지만 엄마인 제 눈에는 진심으로 미래가 너무 걱정됩니다. 목소리도 작고, 눈치 보고, 뒤로 숨는 행동을 해요. 그래서 생각 끝에 움직임이 크지 않은 여자 친구들이나 한두 살 어린 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놀게 해주고 있어요. 집에 초대해서 놀이하던 여자 친구들은 어린이집에서도 단짝이 되어 잘 놀게 되었고, 한두 살 어린 동생들은 남자아이들이다 보니 몸을 많이 쓰게 되어 고민 중입니다. 엄마가 놀이 친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행위가 은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당장 자신감 있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건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그 많은 ‘안 돼’가 은수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서 속상합니다. 사회성 키우기는 저에게는 큰 숙제입니다. 정답이 없는 일이기에 더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Q. 한창 외부 활동을 좋아할 나이인데 운동을 통한 체력 관리 등은 어떻게 하시나요?

은수는 에디노베이트를 주 2회 750단위씩 주사했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주사를 맞으면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에 무릎에서 출혈이 발생하거나 붓는 증상이 나타나서 박영실 교수님과 상의하여 500단위로 1회 주사용량을 낮추고 대신 주 3회 주사를 맞는 것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자주 주사를 맞아서 인지 횟수를 늘리자 출혈빈도와 붓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주말 외부 활동 시에는 활동량을 예측하여 미리 맞추고 활동하게 합니다. 하지만 약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잦은 외부 활동은 어렵습니다. 남은 약의 숫자에 맞춰 외부 활동을 진행하고, 외부 활동 이후에는 꼭 아이스팩을 무릎에 올려줍니다. 또 줄자를 이용해 무릎의 치수를 확인하는 일을 하고, 손으로 무릎의 열감을 확인합니다.

은수가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주사 맞은 날 놀이터에서 놀기입니다. 놀이터에서 놀다온 이후에도 열감, 치수 체크 후 얼음팩 올려주기를 합니다. 비상용으로 깁스도 하고 있습니다. 출혈이나 통증이 있을 때 부목처럼 고정해주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인제의 수영장은 키가 110cm가 넘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키가 110cm가 넘자마자 아빠, 형과 함께 수영장에서 물놀이에 가까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영 역시 주사를 맞은 날만 가기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합니다. 부상으로 은수 무릎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장 조심스럽고 겁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조심 또 조심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