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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건강한 일상 속에서 함께 성장하기
관리자 ㅣ 2019-02-11 09:14 ㅣ 53

이야기를 좋아했던 소심한 아이

안녕하세요,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혈우병A 증증 환우입니다. 요즘 저는 올 겨울이 시작될 때 수술한 무릎의 재활 치료를 위해 환우 쉼터(코헴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단 소식지를 통하여 인사를 드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의 이야기는 소심한 한 꼬마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환우와 가족 여러분들이 함께

겪었던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로 40대 후반에 접어든 저는 군산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저는 출산 과정에서 탯줄을 끊은 후 지혈이 되지 않아, 혈우병 의견 소견을 받았고, 1년 뒤 연대세브란스

병원에서 확진을 받게 됩니다.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환우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1970년대와 80년대는 혈우병에

대한 치료나 관리라는 것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던 시대였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치료약도

한 두 종류 밖에 없었으며 그것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았고, 혈우병 관련 정보와 치료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재단이나 환우 단체도 없었습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고통과 죽음이 잠시 멈춘 기침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때 아파서 잠들지 못했던 새벽, 학교에 가지 못하고 혼자 방에서 듣던 흥겨운

음악과 교육 방송을 내보내던 라디오 소리 등을 기억합니다. 특히 아픈 옆집 아이에게 만화책과 소설책을

빌려주었던 만화방 아저씨는 정말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죠. 그때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넘기며, 쓸쓸하게 죽어가던 파트라슈에 감정이입이 되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과 만화책, 무협지는

어린 저에게는 가장 흥미진진한 놀이꺼리였습니다. 그 책들을 읽는 동안에 저는 방에 누워 있는 아픈 아이가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모험가였습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어머니와의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습니다. 유년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저에게 힘이 되는

든든한 기둥이었고, 언제라도 안길 수 있는 넓은 침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는

저를 업어서 등교를 시키셨고, 중학교 때까지 점심시간에 맞추어 따뜻한 도시락을 전해 주시곤 했습니다.

등교를 시키고 도시락을 전달해 주며 아픈 자신이 무탈한 지 살피고,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인데, 제가 그때의

그녀 나이가 되고, 그녀의 허리는 굽고 키가 한참이나 작아진 후에야, 제가 너무나도 큰 은혜와 사랑을

그녀로부터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대학 교수로서의 삶

저는 현재 서울에 있는 대학의 인문학 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라디오 교육 방송을 들으며

공부하려고 욕심을 냈던 경험과 이런저런 책들을 즐겨 있었던 버릇이 미래의 직업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제가 인문학이나 국문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3 철학 수업 시간이었는데,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유와 언어를 통해 상상하고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고3 남학생의 인생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전공을 국어국문학과로 결정하고, 서울 소재 대학에 지원하면서 제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품을 떠나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죠. 부모님의 반대에도 저는 아프고 어두운

작은 방보다는 조금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었고 서울에서 혼자 대학생활을 하겠다는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은 치료제를 처방받는 일, 주사를 놓는 일 뿐만이 아니라, 낯선 서울에서 대학 생활까지

별탈없이 혼자서 해냈다는 겁니다. 활발하게 일상 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출혈도 자주 나지 않고, 통증도

잘 생기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의 이외에도 문예창작 동아리 활동과 소설 이론 세미나 등에 참여하였으며, 소설을 분석하고 저만의

이론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일이 즐거워 대학원까지 진학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체 조건과 학문적 관심을

고려해서, 직업으로서의 학술 연구를 선택하게 되었고, 2005년부터는 대학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라면, 제가 혈우병성 관절 장애를 갖고 있는 환우다 보니 아마도 오랫동안

서서 강의를 해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학 강의는 보통 1교시가 1시간 15분 강의에 15분 휴식으로

구성되는데, 두 개 이상의 강의가 연달아 개설되는 경우에는 꼬박 3-4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출혈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미리 응고인자를 맞고 강의를 하거나, 연구실에 가져다 놓은 응고인자를

강의 후에 맞기도 합니다.

직업으로서의 교수는 의외로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1교시 강의를 위해서 2-3일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도 하고,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서 몇 달씩 힘들게 자료를 수집하기도 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해야 하며, 매년 문화적인 취향과 지적 감수성이 다른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해야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의 새로운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유튜브에 대한

디지털 문화 및 문학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뿐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매체 등에 재현된, 우리가 다양한 모습으로 즐기고 있는

이야기(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제 일상의 놀이이고 학자로서의 즐거움입니다. 이러한

관심과 연구를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시대의 ()문학적인 인재를 기르는 일이야말로 저에게는 진정한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상을 위한 소확행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미래의 좋은 대학과 직장을 위해서, 아파트와 자식의 대학진학을

위해서 준비하고 고민하는 일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들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세상은 어느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고 알 수도 없는 삶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행복보다는 지금 오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우리 젊은 환우들도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민 중에 혈우병이라는 못마땅한 녀석도

들어있죠. 저도 젊었을 때는 왜 내가 혈우병인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아프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고민에 빠져,

자학하며 망설이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곤 했습니다. 마치 혈우병이 내 인생의 모든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혈우병이라는 하나의 병은 의 인생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재 혈우병 관련한 의학 발달과 혈우재단 및 코헴회의 지원을 생각해 보면, 혈우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환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 혈우병을 가지고 있더라도 생각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환우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 아픈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아픈 것이고 함께 이겨내야(성장해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에 <늑대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아이들이 늑대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와 늑대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인데, 저는

저와 저의 어머니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사소한 조건 하나가 한 존재의 숭고한 생명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과, 가족이란 함께 공존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제 겨울이 지나게 되면 저는 재활치료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준비하고 새로운 작품들을 접하며 소설 이론에 대한 책을 쓰게 될 것입니다. 무릎 수술과 재활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저를 응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도와준 혈우재단과 코헴회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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