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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노력이 만났을 때
관리자 ㅣ 2019-04-09 09:36 ㅣ 234

나를 성장시키는 긍정적인 욕심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수의사가 된 29살 환우입니다. 1년차 새내기 수의사로서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요즘,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태어난 뒤 1년이 지났을 즈음 혈우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당시 제 한 쪽 볼에 퍼렇게

피멍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저의 상태를 심상치 않게 본 의사선생님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검사 결과 8인자 결핍인 혈우병A를 진단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조금 더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저를 데리고 서울대병원으로 가셨지만 그곳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부모님께 혈우재단을 안내해주셨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제가 태어나기 불과 몇 개월 전에 혈우재단이 설립된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출혈에 대한 예방과 관리도 잘 이뤄짐으로써 어려서부터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다만 남들과 달랐던 점을 한 가지 꼽자면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남들보다 욕심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농구였습니다. 농구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저는 방과 후나 점심시간만 되면 농구공을 튕기며 코트 위를 뛰어다녔습니다. 심지어 고작 1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도 농구공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손목을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농구는 주로 손으로 하는 운동인 만큼 손목을 다치면 슛이나 패스를 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손목이 다 나을 때까지 농구를 하지 않을 텐데, 농구를 계속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던 저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농구공을 다루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왼손으로 농구하는 게 차츰

익숙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PC게임에도 푹 빠졌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게임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한 지 채 반 년도 안 되어서 어느새 알아주는실력자가 되었습니다.

학교 내에서 스타크래프트로 1, 2등을 다툴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때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들을 읽은 뒤로 생물과 수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생물과 수학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단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긍정적인 욕심에 의해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수능 성적에 맞춰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공대는 저에게 그다지 즐겁지

않았습니다. 주체적인 선택 없이 그저 상황과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간 결과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대학공부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미래는 막막하게만 보였습니다.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공부는커녕 당장 눈앞의

시험과 과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결국 대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진로는 수의과대학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수의과대학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여 직접 키워보기도 했던

저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였습니다. 특히 어렸을 때 키워본 동물들 가운데 개구리, 타란튤라(거미의 한 종류),

뱀과 같이 다른 애완동물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동물들에 대해서는 해외 사이트를 통해 공부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수의과대학에 들어가면 적어도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끝에, 다행히도 수의예과에 합격하여 올해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수의과대학은 6년제 대학교로, 본과를 준비하는 과정인 2년의 수의예과와 본과인 4년의 수의학과로 나뉩니다.

여기에서는 수의해부학, 수의조직학, 수의생리학, 수의생화학 등의 기초과목과 수의내과학, 수의외과학,

수의영상진단학 등의 임상과목을 배웁니다. 또한 실습과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학과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수의과대학에는 유급제도가 있어서 1년 동안 기준 이하의 평균학점을

받거나 한 과목이라도 F학점을 받는다면 그 학년을 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입학한 후에도

방심하지 말고 공부해야 하며, 교수님의 기준치가 높은 과목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초에 실시하는 수의사 국가시험에 통과하여 수의사 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이 시험은 수의학과 졸업자만 응시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수의학과는 유일한 사립인 건국대학교와

지방거점국립대학교(부산대 제외) 등 총 10개 대학에 있습니다. 수의사 국가시험 역시 의사, 약사 국가시험과

마찬가지로 합격률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큰 문제없이 합격할 수

있습니다.

수의사라고 하면 흔히 동물병원에 있는 수의사를 떠올리실 텐데, 사실 수의사 선생님들은 동물병원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우선 크게 임상분야와 비임상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임상분야는

동물을 직접 관찰하고 치료하는 분야로, ,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소()동물임상과 소, 돼지와

같은 축산동물들을 치료하는 대()동물임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비임상분야는 훨씬 다양합니다. 기초의학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가 하면 공무원이 되어 공중보건 및 방역분야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제약회사나 식품회사 등 다양한 기업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기

저는 본인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공부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게 더 좋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유연하게 공부해야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공부습관이나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봄으로써 본인에게 가장 잘 맞고

효율이 좋은 공부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주변이 시끄러워야 집중이

잘 되는 편이어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공부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지속 가능한 공부패턴개념위주의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공부란, 공부를 할 때 작심삼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하루에 4시간만

자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잠이 부족하여 공부를 할 수 없다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지

말고 피로를 풀어야 합니다. 즉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공부를 계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개념위주의 공부란 무작정 문제풀이를 하기보다는 개념과 이론에 대하여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험이 눈앞에 닥쳤을 때는 기출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되겠지만 수능처럼 장거리

마라톤식의 시험을 볼 때는 기초를 확실히 다져놔야 합니다. 같은 내용이어도 여러 번 반복해서 정리하다 보면

분리되었던 내용들이 연결되고 통합되어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환우들의 경우 공부를 할 때 출혈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출혈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의 경우에는 예방을 열심히 한 덕분에 공부하는 데 지장이 생길 만큼의 출혈은 자주 겪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쯤은 큰 출혈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예방과 관리를 잘하더라도 뜬금없이 터지는

출혈과 통증은 집중력을 무너뜨리고 잘 세워두었던 공부 계획도 단번에 망가뜨립니다. 저는 이런 날에는 공부를

접고 마음 편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출혈 때문에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집중은 안 되는데, 굳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출혈이 공부를 심각하게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방해하는 것은

주변 환경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방해할 만한 주변의 여러 요인들을 주의하고 이따금씩 발생하는

출혈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부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따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각자 미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매번 큰 시험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수능시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공무원시험일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에겐 행정고시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진로에 관한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때때로 실패하기도 합니다. 저도 몇 번

실패를 맛보기도 하였고 재수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라 하더라도 다 같은 실패가 아닙니다. 스스로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실패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이상

더 열심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면 비록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미련이나 후회가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깔끔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결과에 반성하며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우리 환우들,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

모든 분들께서 잘 준비하셔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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