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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나'라는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해
관리자 ㅣ 2019-08-14 11:00 ㅣ 88

머리에 생긴 혹, 혈우병일 줄이야

안녕하세요. 이렇게 재단 소식지를 통해서 여러분들게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올해로 47살로, 현재 인천에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혈우병과 출혈질환으로 함께

고생하시는 환우, 가족 여러분들께 지면으로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8살 때 혈우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워낙 활발하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제가 그만 놀다가

머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있으면 잦아들어야 할 혹이

시간이 지나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머리를 째고 피를 뽑아내는 방식의

치료를 무려 5번이나 했습니다.

그런데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 이거 정말 큰일났구나싶어 이번에는 연대세브란스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똑같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4번씩이나요.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방식의

치료를 시도하고, 치료가 안 된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납득하기 어려울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80년대 초반으로 국내에 혈우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사선생님도 흔치 않았고

약제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하튼 치료를 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여 걱정하던 차에 세브란스병원 소아과에 계시던

김길영 박사님을 뵙고 혈우병A 중등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응고인자제제가 없어서 수술을 해도 어려울 것이라는 암담한 소견을 들었는데, 다행히 미국에서

응고제제를 사용하여 치료중인 한 혈우 환우분으로부터 급하게 약을 구하여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지금처럼, 한창 뜨거운 날씨의 여름이었습니다. 저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저보다 저희 부모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던 날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병원신세를 지는 날이 많아서 출석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2학년부터 6학년을 마칠 때까지 학교에 간 날보다 빠진 날이 더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졸업이 어려울 정도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중학교 때부터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보다 학교에 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혈우병치료제를 맞기 시작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당시에 약값이 너무 비쌌던 탓에 안정적으로 맞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이전보다 건강과 생활이 좋아졌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더욱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의 삶에 대해 책임감도 생겼던 것 같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인드가 바뀌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첫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조회를 위해 학생들이 모이고 교장선생님은 훈화말씀을

하시고자 단상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훈화를 마치고 돌연 ‘OO이는 혈우병이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었겠지만 그 한 마디가 저에겐 상처로 남았습니다. 친구들은 저랑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체벌을 비롯해서 저를 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속에도 나는 아픈 사람이다라는 우울함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울함만 갖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원래 외향적인 성격이라 그랬던 것일 수도 있는데 우울함에 빠져 있기보다

어떻겠든 우울함을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혈우병 환자라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지 않은 방법이지만 약이 있는데도 약을 맞지 않고 오랫동안 버텨보기도 하였고,

병원에 입원해도 가만히 누워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함께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문배달을 비롯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실제로 여러 일들을 해내는 저를 보며 아픈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자림심도 커져갔습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혈우병 치료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집안 살림도 좋아지면서

여러모로 살기에 나아졌습니다.

 

공사장 근로자, 마술사, 사무원 등 안 해본 일 없어

저는 3년 전부터 목조주택 건축회사에서 사무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아침 730분에 사무실에 출근하면

공사진행 일정을 체크하고 고객 상담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주로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니

우리 같은 환우들에게는 최고의 근무환경이라 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걸 좋아해서인지 사무직은 조금 지루합니다.

현재의 직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많은 일들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명 기업의

상품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포장도 해보았고 건설현장에서 인부도 해보았습니다. 마술사도 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직업은 마술사입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오랫동안 마술사로 활동을 했으니 아무래도 제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마술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 월드컵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2002년이었습니다. 마술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로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술 동호회에 가입하여

직접 마술을 배우고 마술사들이 공연하는 현장까지 따라다니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교회, 유치원, 캠프 등에서 마술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떨리기도 하였는데 공연도

많이 하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보면서 정말 즐겁게 일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생겨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게 일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술을 그만 둘 때 후회 없이,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제가 갖고 있었던 정든 마술도구룰 기증하고 떠났습니다.

 

자율과 책임감을 갖는 환우들이 되었으면

올해 3월에는 왼쪽 발목에 관절경수술을 받고 잠시 환우 쉼터(코헴의집)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수술을 받게 된 과정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자면 언제부터인가 꽤 오래전부터 발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조금 힘들다 싶으면 심하게 부어오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발바닥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2주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하여 환우 쉼터에 입소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쉼터에 들어가

여러 환우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것들을 듣고 배웠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수고해주시는 당직자

분들 덕분에 편안하게 재활에 매진할 수 있다는 점도 정말 좋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현재까지도 1주일에 2번 재단에 오면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만

정말 재활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오랫동안 물리치료 받기가 어려운데

재단에서는 하루 종일 있어도 되고, 편안하게 물리치료 받으면서 다른 환우분들도 뵐 수 있어서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혈우병 치료환경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좋은 응고인자제제도 많이 없었고 구하기도 어려웠고, 구한다 하더라도 비싸고 안전성에도 우려가 따랐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로 편해진 거죠.

그런 점에서 젊은 환우분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치료환경이 좋아진 만큼 자신감을 갖고

자율적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보면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제는 스스로 병을

관리할 수 있고 자가주사도 할 수 있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위치가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단순히 회사의 일원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만한 위치까지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자신만의

일을 함으로써 나만의 분야를 개척해보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부모님들께서도 혈우병을 이유로 자녀들을 너무 과하게 케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혈우병이든 학업이든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스스로 관리해나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마음과 걱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양육방식이 자녀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라면 그러한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바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혈우 환우들은 혈우병 외의 진료, 이를테면 치과치료 등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혈우병이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곤

합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제도적, 행정적으로 많은 절차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혈우병 환우들이 주로 찾는

병의원에서만큼은 기본적인 내과 진료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혈우병 치료기관이 다른 일반

의료기관과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환우들이 보다 편리하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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