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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고민하는 삶
관리자 ㅣ 2020-02-03 16:37 ㅣ 171

 안녕하세요. 저는 덴마크와 한국을 오가며 사진과 영상을 작업하는 혈우 환우입니다. 작년에는 좋은 기회가 되어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과 tvN ‘국경없는포차’ 덴마크 편에도 출연하였습니다. 지금은 서울 연남동의 ‘사진온실’ 에서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헴지를 통해서 혈우병 환우 청년들에게 해외여행과 워킹홀리데이 그리고 학업과 취업으로 고민하는 삶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삶을 알려드리고 싶어 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진 동아리부터 전공까지

 저는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칠 때마다 어머니가 주사를 놓아주셨고 때로는 형이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형도 혈우병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형이 자가 주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저 역시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일찍이 자가 주사를 배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공부를 잘하는 편도, 못하는 편도 아닌 항상 중간이었던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중간 성적에 머물렀기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공부는 저의 길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점점 사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진지하게 사진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 학원을 다니며 사진전공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하였고, 4년제 사진과 대학은 대부분이 지방에 있어서 저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출혈이 날 때면 서울에서 가져온 약으로 해결하였지만 부득이하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대구에 위치한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첫 해외 배낭여행으로 떠난 덴마크와의 인연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제 생에 첫 배낭여행을 덴마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저는 우연히 덴마크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화면 속 덴마크 청년이 했던 말이 제 안에 큰 울림을 던져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 버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합니다. 누가 나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좋은 것이지 내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알려진 덴마크로 저는 그렇게 홀로 배낭만 가지고 2주일간의 기차여행을 떠났습니다. 약을 챙기는 일은 즐거운 여행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저는 조그마한 파우치에 약 내용물을 꾹 담아 챙겼습니다. 그리고 혈우재단의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영문 진단서를 발급받아 공항에서 가방 검사를 받을 때 약에 대해 물어보면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 덴마크 배낭여행을 갔을 때는 영어도 잘 모를 때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도시를 경유할 때마다 만나는 덴마크 사람들은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하루는 덴마크 가정집에 초대를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도시를 이동하던 중에 기차 안에서 제 앞에 어느 아주머니와 딸이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습니다. 당시 거의 무전여행으로 돈이 부족했던 저는 용기를 내어 조금만 나눠줄 수 있냐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선뜻 저에게 과일을 나눠주셨습니다. 또, 제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쉬운 단어로 천천히 저에게 어떻게 덴마크에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이것이 도르테(Dorthe) 아주머니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음 날 함께 저녁을 먹자며 저를 초대해주셨고 그렇게 처음으로 해외에서 한 가정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함께하며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행복하세요?”
아주머니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하셨어요.
“응! 내 아이 시프(Sif)가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어서 행복해. 우리는 매일 행복을 고민하며 산단다.”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행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21살에 2주일간의 덴마크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다시 2년 후,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 한 번 더 10일간의 덴마크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첫 여행 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는데, 도르테 아주머니와도 다시 만났습니다. 이때는 아주머니 집에서 3일 정도 머무르며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여행을 통해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으며 소중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영어 공부에 전념하였고, 25살에 덴마크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습니다. 약은 두 달 치 정도를 챙겨갔습니다. 평소에 주사일지를 적는 습관이 있었기에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얼마나 맞는지를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덴마크 워킹홀리데이는 1년간 덴마크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거주할 수 있는 제도로, 만 29세 이하의 청년들까지 신청할 수 있는데요. 두 번의 배낭여행 경험을 통해 저는 쉽게 덴마크 내에서 덴마크 현지 집과 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양식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사진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 이러한 덴마크 생활기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사진 일기 형식으로 연재하기도 하였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inukhi)


덴마크 콘텐츠 활동과 재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내면서 ‘NEXT DOOR CAFÉ’라는 카페를 알게 되었고 이 카페는 곧 저의 조그마한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항상 카페에서 블로그를 쓰거나 사진 작업을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 직원들과 다른 단골손님과도 친해졌습니다.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녀서 친구들의 사진 찍어주며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들은 곧 작업이 되었고 친구들은 제 사진을 좋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프레드 슬(Fred Seul)과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던 저와 사진을 좋아하는 프레드는 자연스럽게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고 덴마크 워킹홀리데이가 끝난 후에도 덴마크를 오가며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덴마크 워킹홀리데이가 끝날 때쯤에 스스로 어떻게 행복할지 고민하는 덴마크 친구들을 통해서 제 삶의 방향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제가 느낀 덴마크를 좀 더 많은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강연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덴마크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년 여름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90일간 체류하며 작업을 하였고 그때마다 저는 프레드의 집에 머무르며 함께 작업하였고 저의 혈우병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에 체류할 때 출혈이 생기면 저는 프레드의 집에서 자가 주사를 맞았고 프레드도 제 병을 이해해주었답니다. 석 달을 체류할 때마다 가끔은 약이 모자랄 때가 있는데, 그때면 한국의 형이나 부모님께 부탁하여 우체국 해외 택배로 약을 받곤 했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하다 보면 오른 팔꿈치를 많이 쓰기 때문에 집에서 아령으로 운동을 간간이 하거나 얼음찜질로 재활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TV출연과 앞으로의 활동 이야기 
 2018년 여름, ‘NEXT DOOR CAF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에 아이돌그룹 에이핑크의 윤보미 님이 찾아와 코펜하겐 시내에 포장마차를 열었다며 놀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tvN ‘국경없는포차’ 촬영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 뉘하운 지역에 만들어진 포장마차에 찾아갔습니다. 마치 한국에 온 것처럼 포장마차에서 저희는 한식을 먹으며 배우 신세경 님, 이이경 님 그리고 윤보미 님과 좋은 시간을 보냈고 작년 2월에 저희가 출연한 방송이 방영되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프레드의 노래로 한국에서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온 뒤 저는 프레드와 함께 한국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1월에는 프레드가 직접 한국을 찾아왔고 저는 매니저로서 공연 기획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때를 시작으로 저희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현재 많은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영상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했던 저는 이제 덴마크에서 만난 인연을 이어가 덴마크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처럼 혈우병인 청년 여러분들도 다른 나라로 워킹홀리데이나 배낭여행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간다면 나를 이해해주고 혈우병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환우분들 모두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2020년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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