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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나를 더욱 열심히 살게 하는 혈우병
관리자 ㅣ 2020-02-03 16:39 ㅣ 113

 안녕하세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31살 혈우 환우입니다. 이렇게 코헴지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과 함께 극복한 어린 시절

 저는 태어나자마자 혈우병임을 알았습니다. 탯줄을 자르고 난 뒤에 지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출혈이 심해서 포대기가 전부 피로 젖어버렸다고 합니다. 출혈로 인해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병원에서 선천적으로 응고인자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혈우병 A나 B가 아니었기에 당시에도 저와 같은 질병의 환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환자가 드문 경우다 보니 알맞은 치료제도 없어서 응고인자가 없거나, 다칠 때마다 혈장을 주사했습니다. 또, 맞을 때마다 응급실에 방문해야 했습니다. 가끔은 약이 몸에 맞지 않아서 두드러기가 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피브리노겐이라는 약을 알게 되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활발한 성격이었고 나서기를 좋아했던 탓에 병원 신세를 참 많이 졌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영을 추천해 주셨지만, 경쟁심도 세고 다양한 운동에도 관심이 많아서 수영뿐만이 아니라 스키, 격투기, 헬스 등의 과격한 운동도 조금씩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는 스포츠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제 운동 실력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의 꾸준한 운동은 제 근력을 키워주었고, 유연성도 길러져서 오히려 덜 다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금 늦게 시작한 공부

  저는 현재 한국전력공사에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를 지원하여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가수의 꿈을 가지고 5년간 연예기획사 연습생으로 있으며 연예인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연습곡 한 곡을 끝내면 그다음 연습곡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는 소홀히 하였습니다. 같이 연습하던 친구 중, 연예인으로 대박이 난 친구를 부러워만 하다가 고3이 되고 나서야 공부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꾸준하게 노력한 만큼 비교적 공정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고2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학 과외를 등록하게 되었고, 고3 때부터 중학교 수학책을 가지고 교무실에 질문하러 다니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중학교 수학을 물어보는 저의 황당한 질문에도 제 일인 듯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고마운 마음에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더욱 몰입하였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전기공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 화학, 전기 등 많은 공학 분야가 합쳐져 있는 물건인 자동차를 좋아했었고, 조만간 전기자동차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이 다가오고, 대기업에 가서 전기차를 만들 것이냐, 공공기관에 가서 전기차를 보급하는 역할을 할 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저는 결국 전기차를 보급할 환경, 정책을 이끌어보는 역할이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최종적으로 한전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사원 때는 국내 전기차 충전소 보급과 관리시스템 망을 구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학부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에너지 효율 관련 업무와 땅속으로 전력을 보내는 지중 배전망 운영을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지방 근무와 출혈 관리

 공기업의 특성상 지방 근무가 많기 때문에 출혈 관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한번은 사내 건강검진을 하며 채혈을 했었는데, 당시 지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지방에 약도 갖다 놓지 않은 상황이었고,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테이프로 꽁꽁 싸매 지혈을 하다가 주말에야 겨우 응고인자를 투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는 항상 예방요법을 철저히 하고, 회식을 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에도 넘어져 다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또한 꾸준한 운동으로 근력과 유연성을 향상·유지하여 최대한 출혈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운동은 하면 할수록 몸이 성장하는 것이 느껴져서 마치 현실판 컴퓨터게임을 하는 기분입니다. 게임은 컴퓨터를 끄면 끝나지만, 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니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로 올해 안에 피트니스 대회도 나가보고 싶습니다. 또, 저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코인노래방에 가거나 드라이브를 하기도 합니다. 환우 여러분들도 본인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더욱더 독하게! 열심히!

 저는 앞으로 전력망과 관련된 일을 쌓아가며,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추가적인 공부를 더 할 생각입니다. 또, 전력망 유지보수 관련 사업 또한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한전이라는 직장이 공기업이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뭔가 한번 사는 인생인데 도전적으로 욕심 있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비록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나 주기적으로 주사도 맞아야하고 출혈이 쉽게 된다는 것은 꽤 큰 족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저를 더욱 독하게, 열심히 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제 개인적인 일에만 신경을 쓴 바람에 많은 환우분들과 뵙고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다른 환우 분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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