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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무릎 수술을 통해 찾은 즐거운 인생
관리자 ㅣ 2020-04-01 11:41 ㅣ 179

 안녕하세요. 올해로 34년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혈우병A 환우입니다. 이렇게 코헴지를 통해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아픈 시절 가지게 된 교사라는 꿈
 저는 1962년도에 태어나 혈우재단이 생기기 전까지 출혈이 생겨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어릴 때부터 피가 나면 쉽게 멈추지 않았고 멍도 잘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출혈이 멈추지 않는 이유가 혈우병인지도 모르고 피가 나면 나는 대로 흘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광주에서 교사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서울 신길동에 혈우재단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중증 혈우병A라는 진단을 받았고 바로 혈우재단에 등록하였습니다. 재단에 등록하면서부터 유지요법을 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많은 고통 속에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 동년배분들이라면 모두 저와 같은 힘든 시절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에는 약이 없던 때라 출혈로 인해 몸이 아프면 집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는 절반도 출석하지 못했고, 출석 일수가 부족해서 남들보다 1년 더 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아플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또, 학교에 가더라도 친구들이 놀고 공부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고, 자연스럽게 열등감 많은 내성적인 학생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몸이 자주 아프다 보니 어릴 때부터 교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학교 선생님들을 보며 선생님이 되면 농사일에 비해 육체적인 노동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몸이 좀 더 건강했다면 경찰이나 군인 등 다른 꿈을 가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공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제가 교사라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서 무척 행복합니다.


 세 번의 수술과 재활
 2016년에 양쪽 다리 수술과 목디스크 수술까지 총 세 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전 제 다리는 관절 연골이 많이 상해서 양쪽 모두 관절 가동 범위가 거의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다리는 항상 강직되어 있었고 언제 넘어질지 몰라 긴장하고 다니다 보니 목에 디스크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학교에는 계단이 많아서 이동을 위해 오르내릴 때마다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수술을 많이 권했고 저는 고민 끝에 1년간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먼저 재단에 방문해서 진단을 받았고, 수술은 전남대 병원에서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많이 늦어져서 무릎은 이미 너무 상해있었고 그만큼 뼈를 많이 잘라내야 했습니다. 큰 수술이었지만 다행히 무릎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퇴원한 뒤에는 매일 재단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고, 러닝머신과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며 재활에 매진하였습니다. 수술 후 1년 정도는 꾸준히 일주일에 4일 이상 재단의원에 갔습니다. 재단의원의 선생님들도 함께 노력해주신 덕분에 저는 잘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3일은 재단의원에 가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수술 후, 제 일상은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술 전에는 언제 넘어질지 몰라서 늘 긴장하고 살다 보니 남을 생각할 여유도 없고 항상 인상을 쓰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며 수술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여유도 생겨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다시 찾은 일상
 재활까지 잘 마치고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학교에 출근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다 보니 오후 4시 30분까지가 근무시간이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배려해주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4시쯤 퇴근하여 광주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습니다. 퇴근 후 재단의원에 가지 않을 때는 보통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목욕탕에 들릅니다. 언제 출혈이 날지 몰라서 항상 긴장하고 있는 몸을 1시간 정도 따뜻한 물에 담그면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리고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또, 저는 걷기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집 근처에 있는 병풍산에 가서 2시간 정도 산책을 하곤 합니다. 몸이 좀 뻐근해지긴 하지만 근육이 튼튼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걸을 때는 항상 만보기를 차고 다니며 제가 얼마나 걸었는지를 체크합니다. 사실 걷기 이외에 다른 운동은 관절이 안 좋아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이 함께 골프를 치자고 권유하기도 했었지만, 관절이 좋지 않고 수술한 다리에도 무리가 갈 것 같아서 함께하지 못했는데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혈우병을 굳이 동료 선생님들에게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알리지는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 선생님들 모두가 알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축구를 하다가 공을 잘못 찬 나머지 통증이 무척 심해졌을 때입니다. 참아보려고 했으나 너무 아파서 동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당시, 담당 의료진이 함께 간 선생님에게 저의 혈우병을 말해버렸고 그 선생님이 또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하는 바람에 모두가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본의 아니게 저의 병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당시 무척 당황스러웠고,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들 혈우병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한 채, 피가 멈추지 않는 병으로만 알고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옮겨서 동료 선생님들이 제 혈우병에 대해 모르지만 스스로 출혈관리를 잘하면서 즐겁게 교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삶!
 요즘은 좋은 혈우병약이 많이 나와서 어린 환우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을 보면 꿈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취업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또, 건강상의 이유로 좌절하는 젊은 환우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혈우 환우분들 중에서는 의사, 운동선수, 공무원, 변호사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이룬 분들이 많으니 다들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교사를 꿈꾸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며 지도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늘 서 있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꿈이 있다면 굳은 결심을 가지고 도전해볼 만한 직업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꿈을 찾아 잘 펼쳐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저에게 혈우병은 교만했을 수도 있는 제 성격과 마음을 겸손하게 바꿔준 병인 것 같습니다. 혈우병이 아니었다면 제 성격상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병으로 인해서 다른 질환도 이해하게 되었고, 교만한 마음을 겸손으로 바꾼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혈우병을 잘 관리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며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환우분들 모두 혈우병을 잘 관리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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