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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부모 수기] 여태껏 지켜주느라 수고 많았어요
관리자 ㅣ 2020-08-03 14:16 ㅣ 169

안녕하세요. 거제시에 사는 환우의 엄마입니다. 얼마 전 아이가 아파서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있었던 일이라 당시에는 정말 혼란스러웠지만,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무사히 넘겼고 이렇게 코헴지 수기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다른 환우, 가족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응급상황>

지난 530일 새벽 2, 부산으로 향하는 앰뷸런스 안에는 간간히 들리는 사이렌 소리 외에는 조용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전날, 아이는 유치원에서 놀다가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박았고, 뇌출혈 진단 후 급히 부산 백병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코로나로 5개월 가까이 집콕 생활을 하다가 개학을 한 지 고작 3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눈에 띄게 힘이 없어 보였고, 저는 동그래진 눈으로 무슨 일이냐며 다그쳤습니다. 그게 무서웠던 것일까요? 아이는 여러 차례 물어봐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만 대답했습니다. 피곤하다며 다른 날 보다 일찍 잠이 든 아이는 이른 새벽 양쪽 머리를 부여잡고, 목이 아프다, 코가 막혀서 숨이 안 쉬어진다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습니다. 그제서야 아이 아빠가 말해준 건, 아이가 엄마에겐 말하지 말라고 하며, 사실은 오늘 여차여차해서 유치원에서 다쳤다고 아빠에게 몰래 말했다는 것입니다. 워낙 자주 다치는 6살 남자아이이기에 본인도, 가족도 현명하고 신속하게 대처를 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제 촉이 안 좋았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주사를 맞으러 가자는 남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고, 겨우 다시 잠이 든 아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CT 검사를 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응급실 복도에 왈칵 토를 해버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볼 것도 없이 뇌출혈로 인한 구토가 맞다고 하여 당장 가져온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부산의 큰 병원으로 가라고 앰뷸런스를 불러주셨습니다. 흔들리는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한 시간 남짓 달리는 차 안에서 저는 울지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뇌출혈인 것도 적잖이 충격이지만, 저 스스로에게도 무척 충격이었습니다. 혈우병 아이의 엄마임에도 제가 얼마나 아이에게 무서운 존재였길래 다쳤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하게 만들었을까, 왜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왜 난 이 아이를 아프게 낳아서, ..., ... 온갖 자책 때문에 울 자격도 없다고, 얼마나 스스로를 욕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앰뷸런스 안에 같이 탄 구조사 님이 물으셨습니다.

 "아이 뇌출혈이 이번이 처음인가요?"

  저는 짧게 ''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아신 걸까요? 구조사 님이 해주신 말씀에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6살인데 여태껏 아이를 지켜주느라 참 수고 많았네요."

 

<생후 100일 알게 된 아이의 혈우병>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지났을 무렵, 아기띠를 하고 외출을 다녀온 저녁에 샤워를 시키려고 옷을 벗기면서 저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기띠를 맨 자국대로 멍이 시퍼렇게 들다 못해 딱딱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엄마는 이거 왜 이런 거냐고, 아기띠 만든 회사가 이상한 것 아니냐며 맘카페에 사진을 올렸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쓴 게시글인데 댓글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느니, 혹시 아이를 떨어뜨렸냐 느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한 댓글에서는 아기띠를 맨다고 그런 멍이 들지는 않는다며 얼른 응급실이라도 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집 앞 병원에 갔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확률은 낮지만, 혈우병이 의심된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걱정은 말라며 주신 의사 소견서를 받아 양산 부산대병원에 가던 차 안에서도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주변에 혈우병이 아무도 없기도 하고, 이런 병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진단서 한 장으로 확인이 된 그날 밤, 저는 아침을 맞도록 펑펑 울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하루도 죄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혈우병인 게 사실 제 잘못도 아니며, 그 누구도 저를 탓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두들 제게 힘을 북돋아 줬을 뿐이지만, 정작 저는 스스로를 항상 죄인 취급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늘 가시방석이었던 저에게, 구조사 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밝게!>

 아이는 그나마 빨리 주사를 맞은 덕에 다행히 수술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재단 세미나를 통해 만나 뵈었던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박지경 교수님이 우리 아이의 주치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깊은 새벽, 정신줄이 반쯤 나간 엄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산 혈우재단의 김선경 상담사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아직까지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매일 두 번씩 고용량으로 맞던 주사도 이젠 경과가 좋아져서 이틀에 한 번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유치원도, 놀이터도 갈 수 없게 됐고, 정기적으로 부산을 오가며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혈관을 아끼겠다는 일념으로 한 주에 한 번만 맞던 유지 요법을 정석대로 최소 6개월간은 한 주에 두 번 꼬박꼬박 맞아야 하고, 겁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안 하려 했던 주사 교육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아찔한 경험으로 저는 한 뼘 만큼 더 단단해진 기분입니다. 아이도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주변에 계신 어른들께 도움 청하는 걸 주저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듯합니다. 주변의 걱정하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조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더욱더 따스하게 도와주려고 합니다. 저 역시 자책만 하지 말고, 더욱 힘을 내서 밝게, 당차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멋진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혈우병 아이를 키우시는 모든 엄마들이 너무 자책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엔 우리에게 온 이 아이가 천사와 같이 사랑스럽지 않나요?

여태껏 아이를 지켜주느라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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