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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부모 수기]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룬 아들과의 행복한 삶
관리자 ㅣ 2020-10-05 13:59 ㅣ 58
안녕하세요. 김해시에 거주하고 있는 환우 엄마입니다. 신랑은 16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 혼자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큰아들은 지금 직장 때문에 분가를 하여, 환우 아들과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아들은 살림을 하고, 저는 직장에 다니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들의 혈우병으로 알게 된 보인자인 나

저희 아들은 생후 6개월쯤 됐을 때 혈우병임을 알았습니다. 아들을 보행기에 태웠는데, 탈 때마다 멍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피부가 하얀 편이라 조그마한 멍도 뚜렷하게 보여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멍 부위에 몽우리가 잡혀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멍이 든 형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며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찾아가 연륜이 많으신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혈우병 아니면 백혈병 같다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고, 그길로 부산 백병원에 갔습니다.

백병원에서도 혈우병 아니면 백혈병이 의심된다고 하며 정확한 검사결과는 보름 정도 지나야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그 보름은 정말 기다림이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애타는 보름이 지났고, 혈우병이라는 결과를 들었습니다. 제 삼촌은 결과를 듣고 희귀질환이면 재단이 있을 거라고 하며 알아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삼촌의 도움으로 혈우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를 재단에 등록을 시켜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혈우병 보인자인 저는 혈우재단에 아들을 등록시키고 난 뒤에야 제가 보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혹 예고 없이 코피가 쏟아져 나오거나 한 적은 있었지만, 커오면서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보인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재단에서는 혈우병이 모태 유전이라고 하였고, 아들이 혈우병 진단을 받아서 저도 검사를 받아본 것입니다. 사실 검사를 받고자 한 이유는 의사 선생님이 간혹 돌연변이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5녀 중 넷째인데, 조카들 중에서 혈우병을 앓는 조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희 큰아들도 혈우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유전이 아닌 돌연변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보인자라고 나온 것입니다. 저는 결과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나 때문에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정말 아팠습니다.

 

우여곡절 많았던 아들의 어린 시절

아이가 혈우병을 진단받고 난 후부터 제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로 바뀌었습니다. 한창 걸음마를 할 때라 아이의 몸과 제 눈이 일심동체가 되어 하루 종일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지켜봤습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저녁에는 지쳐 쓰러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조용해서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들의 눈동자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흰동자가 모여 있고 오른쪽 팔이 뻣뻣했습니다. 몸은 떨면서 입에선 거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신랑한테 아이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하였고, 신랑도 아이를 보자마자 놀라서 빨리 병원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가까운 응급실에 갔는데, 선생님 소견으로는 간결병 같다며 입원해서 월요일에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습니다. 하필 그날이 토요일이라 이틀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저희는 너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백병원에 가자고 신랑을 설득하였고, 그길로 백병원 응급실에 찾아갔습니다. 백병원에서는 머리 출혈로 인해 신경이 눌려서 그렇다고 하였고, 응고인자를 맞고 보름 동안 입원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사를 맞으러 갈 때마다 저는 늘 아들에게, 아플 때 빨리 말하지 않고 참으면 참은 만큼 더 주사를 많이 맞을 거라고, 아플 때 빨리 이야기해야 주사를 적게 맞는다고 주문을 외듯 말했습니다. 그 덕인지 어느 날은 아들이 먼저 어디가 아프다며 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참으면 주사를 더 많이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아이의 주사 횟수는 줄어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아이에게 수영을 계속 시켰습니다. 어릴 때, 고관절을 다치고 발목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예방요법을 열심히 해서 같은 또래 환우들보다는 증상이 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게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그래도 몸에 무리가 가는 건 자제해서 관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당시에야 저를 원망했겠지만, 철이 들고 건강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어서 이해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탈도 많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 이렇게 올곧게 자라주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우 모임에서 만난 고마운 청년

저는 늘 아들을 긍정적인 마인드로 키워왔습니다. 제가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혈우 환우 모임에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청년이 다가와서 처음 뵙는다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으며 저에게 부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는 이미 장애가 있다며, 제 아들에게는 정신적인 장애를 만들지 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다칠까 봐 너무 집에서만 키우지 말고 놀이터에 나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하고 힘들어도 그냥 정상적인 아이들과 똑같이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키우면서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다칠까봐 놀이터는 갈 생각도 안했고, 집에서 아들만 쫓아다니면서 뭐든 하지 말라는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못하는 아들도, 아들의 행동을 못 하게 하는 저도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다치면 그냥 주사를 맞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놀이터에 갔는데, 아이가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놀이터에 나가 놀게 되었고, 처음에는 다치는 횟수도 많았는데, 가면 갈수록 그 횟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아직도 너무나 고마운 그 청년이 생각납니다.

 

건강 때문에 그만둔 아들의 일

아들은 중학교 때,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힘들고 위험한데 왜 요리사를 하려 하냐며 다른 안정적인 것을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요리사가 꼭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학원에 다녀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학원에 다녀본 아들은 요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학원을 다니면서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요리학교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호텔에도 취업을 했습니다. 아들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러 다녔지만, 약이 늘 부족했고 몸도 잘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은 몸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몸이 우선이니 일단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고, 결국 몇 달 더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는 아들을 보며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학교 다닐 때, 알바도 많이 하고 몸 관리도 잘하는 편이라 크게 걱정을 안 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건강한 청년인데, 장애 아닌 장애인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든든한 안식처인 혈우재단

지난 6월에 저는 무릎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슬관절 파열이라며 시술을 받아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혈우병 보인자인데, 여기에서 시술을 받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복잡해진 저는, 혈우재단에 문의하였습니다. 서울에 가보는 게 좋은 상황이었지만, 직장에 다니다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재단의 김선경 상담원 선생님이 서울에 가기 전에 혈우병을 잘 아시는 이상훈 원장님한테 한번 먼저 상담을 받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상담원 선생님은 제가 상담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이상훈 원장님께 미리 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상담 결과 원장님께서 시술을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원장님과 상담원 선생님 덕분에 시술 도중에 다른 사람들보다 출혈은 좀 많았지만, 큰 문제없이 잘 끝났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이 많았는데, 혈우재단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간호 선생님, 복지 선생님들이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해줍니다. 재단은 저에게 든든한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저는 늘 아들에게 혈우병은 병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친구라며, 같이 안 놀아주면 가끔씩 놀아달라고 몸을 아프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아파서 주사를 맞을 때도 친구랑 안 놀아줘서 그렇다며 씩 웃어주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혈우병을 대하면 아이의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다른 환우 가족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혈우병을 잘 관리하시면 좋겠습니다. , 저와 같은 다른 보인자 여성분들도 항상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아들과 함께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다른 환우와 가족분들도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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