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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기타]엄혹했던 시기를 이겨내고 공직을 무사히 마친 환우님의 이야기
관리자 ㅣ 2024-05-29 13:44 ㅣ 256
경기도 이기민 님

Q.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A.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한 후, 현재 건설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는 이기민이라고 합니다.

Q. 혈우환우들에게 공무원은 어떨까요?
A. 적극 추천합니다. 전 토목직 공무원이었어요. 단, 특정직 공무원인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군인, 군무원, 공공시설 경호 및 경비 등의 보직은 많은 신체활동이 필요하니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도 위험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나도 소방공무원을 13개월 동안 한 적 있는데, 여차할 땐 몸을 써야 하는 일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소방공무원에서 어떻게 토목직 공무원으로 변경하셨나요?
A. 대학 때 원래 전공이 토목이어서 형님이 바꿔보라고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Q. 공무원이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A. 건설현장에서 일했겠죠. 만약 당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군산 비행장 활주로 건설현장에 갔을 겁니다. 아니면 설계용역회사에 입사했을 수도 있고요.

Q. 건설업 분야는 환우분들이 일하기에 힘들지 않을까요?
A. 토목, 기계, 건축설계 등은 환우들이 직업으로 삼기에 괜찮습니다. 기술사 자격증만 따면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정년 없이 75세 까지 일할 수 있거든요. 정년이 없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내가 근무한 회사의 차장급 직원들도 기술자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기술이라는 분야의 특성이 정년이 길고 상대적으로 취업할 곳이 많죠. 사회적으로 인정도 해줍니다. 가능하다면 전문직종으로 진출하는 편이 노후에 안정적입니다.

Q. 상경, 인문계열을 졸업한 사람도 기술이 필요한 건설업에 종사할 수 있을까요.
A.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4년제 학위가 있어야 하고, 실무 경력이 2, 4년 이상 돼야 합니다. 건설기술자로 취업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자격증은 몇 개 정도 취득하셨나요?
A. 5~6개 정도 딴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저처럼 많이 따지는 않는데 자격증 1개를 취득하면 다른 자격증 시험의 일부 과목이 면제가 되는 혜택이 주어집니다. 그걸 이용해서 좀 더 공부해 하나씩 더 따다보니 많이 갖게 됐네요. 기술사 자격증은 없고 토목기사, 측지기사, 재료시험, 소방설비 등을 취득했어요.

Q. 어떤 이유로 많은 자격증을 따셨나요?
A. 토목을 전공해 딸 수 있는 자격증은 다 땄어요. 하나 따다보니 다른 자격증에도 도전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공무원하면 써 먹을 일은 없어요(웃음).
하지만 퇴직 후, 민간 기업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결국 자격증은 언제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건설 프로젝트가 생기면 참여 기술자로 현장에 나갈 수 있어요. 기술사, 기사도 모두 참여 가능합니다. 나중엔 총괄 책임자로 팀을 이끌기도 합니다.

Q. 혈우병 진단은 성인이 돼 받으셨어요. 그러면 인지하신 것은 언제신가요?
A. 1972년쯤일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썰매를 타다 넘어졌는데 무릎이 부었어요. 지혈도 안 되고 출혈이 심해 붓기가 허벅지까지 진행됐어요. 수원의 한 외과병원에 갔는데 어머니는 팔, 아버지는 머리를 잡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수술했습니다. 허벅지에서 응고된 피를 한 덩어리 끄집어냈어요. 이후에도 지혈이 안 됐고, 의사도 원인을 모르니 경기도립병원, 기독병원 등 당시 수원에서 꽤 규모 있는 병원으로 수혈하러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뻔했죠.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되는대로 반병에 3천원 주고 맞기도 했네요. 지혈이 안 돼 의사도 겁이나니 비닐로 수술 부위를 싸맸습니다. 그런다고 지혈이 되나요. 붕대로는 감당이 안 됐죠. 당시에는 지하철도 없을 때고, 교통망이 열악해 서울로 가는 것은 엄두가 안 났죠. 결국 4학년 개학식엔 못 갔어요. 시간이 지나 지혈이 됐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맹장수술을 했는데 또 지혈이 안 됐어요. 당시엔 의사가 지혈이 안 되는 체질이라고 했어요. 크면서 코피가 나면 지혈이 안 돼 밤새 코피가 흐르고, 부모님은 기가 허한 줄 알고 한약을 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Q. 당시엔 맹장수술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A. 고생했습니다. 토요일에 배가 아프더니 일요일엔 약으로 버티다가 병원에 갔어요. 충수염으로 악화돼 배 안에서 터졌죠. 그래서 호스를 넣어서 피 등을 빼냈습니다. 당시 의사가 혈우병이라고 하더군요. 의사가 아버지에게 군대가면 안 되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나마 혈우병에 대해 알고 있는 의사 분을 만난 게 다행이었어요. 그 분이 깁스해 안정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4주 간 입원하고 진단서를 발급받았어요.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다치기만 하면 나를 제일 잘 아는 그 병원만 내원했어요. 그때부터 관절이 부으면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체육이나 교련수업도 받지 않았어요. 고등학생이 된 이후 1년에 한 번씩은 그렇게 누워있던 일이 반복됐죠.
그러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내 상황을 알려야 해, 가져갈 수 있는 서류는 다 가져간 것 같아요. 동네 이웃들의 서명을 받아 ‘인후보증서’와 병원 진단서를 갖고 병무청에 갔습니다. 당시엔 신검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서류를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모병관이 정밀검사 받아봤냐고 물어, 안 해봤다고 답하니 등촌동에 있던 국군수도병원에서 정밀검사 받고 다시 오라며 일단 판정 유보를 해줬어요. 친구들을 포함해 수도병원에 3명이 갔는데 우리가 아직 민간인인데도 군기를 심하게 잡더군요. 게다가 정밀검사라면서 엑스레이 한 번 찍고, 가져간 서류는 읽어보지도 않았죠. 아무 필요 없었어요. 결국 현역 판정을 받았습니다.

Q. 답답한 상황이네요. 입대 후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A. 무척 힘들었습니다. 요즘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군대에 구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모내기 지원을 나갔어요. 작업하러 바지를 걷었는데 인사장교가 내 멍든 다리를 보더니 작업에서 열외 시킨 적도 있어요. 맞기도 많이 맞았죠. 선임의 주먹에 이명이 생기기도 했고 지금도 완치 안됐어요. 또 다리를 벌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엉거주춤 서 있으니 중대장이 날 의정부의 야전병원으로 보내기도 했어요.

Q. 군에서 크게 다치시진 않았나요?
A. 희한하게 군대에서 크게 아팠던 일은 없었어요. 집에서도 진작 군대 보낼 걸 그랬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고참이 되면서 덜 아프고 다쳤습니다.
하지만 다치지 않을 순 없었죠. 한번은 밤에 도랑을 건너다 미끄러져 무릎이 부어 사단 의무대로 갔어요. 주사기로 피를 빼는데 지혈제도 놓지 않았어요. 혈우병인지, 이 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집안 식구들은 당연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버지도 나도 신검 전에 큰 병원을 가보지 않은 점이 아쉽기는 합니다. 도립병원에서도 혈우병을 몰라 담당과를 정하지 못해 결국 임상병리실에서 채혈을 했는데, 담당자가 귀를 따보더니 ‘피가 안 멈추는 건 아니네요’라고 하더군요. 사회 전반적으로 혈우병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때였습니다. 신검에서 제대로 판정받아 군대를 면제 받았다면 지금 더 건강했을 수 있겠죠. 공병부대에서 근무했으니 매일 삽질하는 등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무릎 때문에 병원에 간 적은 없었어요. 축구하고 운동하며, 활동 못 할 만큼은 아니었고, 내원해도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었으니까. 방치하는 느낌이었고, 그러려니 하고 살았어요.

Q. 가장 힘드셨던 점이 있다면?
한번은 오전 7시까지 아들 군대 면회를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자던 중에 잇몸이 헐어서 입 안 가득 피가 고여, 새벽 2시에 응급실에 가 접수했는데 혈액내과 담당의가 당직이 아니고, 연락을 했다고 해 마냥 기다렸어요. 
우여곡절 끝에 내가 가져간 응고인자제제를 응급실 의사에게 주니 어떻게 하냐고 되물어 내가 설명해 줬어요. 비싼 약을 많이 흘렸지만 일단 지혈은 됐어요. 그리고 면회를 가는데 아들은 왜 안 오냐고 전화를 조바심을 내더군요.
예전엔 식구들 걱정 끼치기 싫어서 가족 모르게 혼자 병원을 오간 적이 많아요. 어떤 병원에선 의사가 ‘아픈 것 잘 참아요?’하고 묻기도 했어요. 발톱이 빠진 채 출근하고, 출장 가느라 신발에 피가 흥건해 사람들이 놀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도 그러려니 했는데,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병원에서 희귀난치병 코드를 입력해야 하는데 잘못해 병원비가 200만 원 넘게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Q. 제대 이후 혈우병 진단을 확정 받으신 것인지요?
A. 30살 때쯤 사랑니가 썩어 치과에 갔어요. 과거 출혈 이력을 의사한테 보여줬더니 혈액내과에 다녀오라더군요. 거기서 8인자 혈우병 진단받고, 혈우재단에도 등록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간단한 충치 발치임에도 수술실에서 했죠. 집에서 재단까지 거리가 멀어 잘 안 오게 됐고, 무릎이 아프고, 운동하다 부으면 한 번씩 왔어요. 그때부터 예방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네요.
결국, 심각해 졌습니다. 40대 초중반 쯤 골프를 쳤는데 걸을 때 아프고 시큰거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로비의 거울에 비친 내 걷는 모습을 봤는데 절뚝거린다는 걸 인지했어요. 주의 깊게 살폈죠. 되도록 걷지 않고 조심했는데 결국 통증 때문에 골프를 그만뒀어요. 진통제 맞는데도 한계가 있더군요.

Q. 예방요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3년 전쯤 무릎이 한참 아플 땐 1주일에 2번 정도 맞았어요. 자가주사 교육도 받은 뒤 7년 전쯤 자가주사를 시작했어요. 꾸준히 실천하지 못해 점점 안 좋아지다가 수술까지 하게 됐네요. 의사분이 65세 이전엔 너무 일러 수술 해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진료실로 절뚝거리며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고 삶의 질이 걱정된다며 수술을 결정해 주셨습니다. 

Q. 수술 후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A. 관절 펴는 연습을 하고 있고, 목표치의 70%는 달성했어요. 수술 후 재활로 과거보다 10도가 더 펴집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재활하고 좋아진다 싶을 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특별한 것은 없고, 수영을 3~4년 쉬다가 다시 시작한지 2년 됐어요. 물속에서 걷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수영보다 낫다고 하던데, 지인들도 수영해서 효과 봤다고 하고 추천해 주는 지인들도 꽤 있어요. 물속에서 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Q. 자가주사의 필요성은 언제 느꼈는지?
A. 응급실을 들락날락 할 때는 느끼지 못했죠. 7년 전쯤 하다가 최근 다시 시작하니 자신감이 붙었네요. 재단에서 연습했는데 간호사 분의 독려와 지원으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꾸준함과 예방이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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