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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무지했던 과거와 대학원생인 현재, 그리고 혈우병의 미래 :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관리자 ㅣ 2024-06-03 16:57 ㅣ 274

장지훈 환우

■ 첫 번째 여정, 과거의 나에게 묻다

혈우병A 중증으로 태어난 저에게 지난 25년은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운 좋게 큰 문제없이 성장하였으며, 가끔씩 유지요법을 잊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혈우재단 서울의원에서 약을 타는 순간만이 제가 환우라는 사실을 깨닫는 유일한 시간이었죠.

대학교 3학년 때까지 평범한 대학생처럼 생활하며 취업을 걱정하던 2022년 9월, 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헬스케어 공학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담당 교수님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실망했지만, 이 수업은 제 인생을 바꿀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수업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의학적 문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다뤘습니다. 학점을 잘 받으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이 수업을 통해 혈우병 환우들이 겪는 불편함을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무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의사 출신이신 새로운 교수님에게 제가 아는 얕은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인데 이렇게 무지해서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혈우병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의학적인 부분은 의사 선생님의 몫이니, 저는 공학 기술로 저와 같은 환우를 돕고 싶습니다”

이 말을 계기로 저는 현재 대학원 석사 1년 차가 되었습니다.


■ 두 번째 여정, 대학원생으로서의 궁금증

대학원생이 되면서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여행 시 환우들은 어떤 불편을 겪는지, 한국의 혈우병 환우들에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환우 어머니와 어린 환우의 우울 정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혼자 걷기에는 험하고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서 올해 WFH가 마드리드에서 주최하는 세계총회에 참석하여 저의 궁금증을 세계 각국의 환우들에게 물어보라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분의 도움으로 총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전 세계 환우들과 나누기 위해 포스터와 설문지를 만들어 연구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했습니다.

머나먼 타지에 혼자 여행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큰 목표가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다양한 나라의 NMO(National Member Organization, 세계혈우연맹의 회원국)를 만나러 다녔습니다.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 NMO와 맥주를 마시며 인생사를 나눈 것과 덴마크 NMO와 북한의 혈우병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NMO와 의견을 나눈 후 혈우병 환우의 해외여행 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40개국 이상에서 50명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 세 번째 여정, 혈우병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다

GNMOT(글로벌 NMO 트레이닝)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최근 WHO와 ISTH(국제혈전지혈학회)의 혈우병 치료 지침이 변경되었습니다. WHO의 핵심의약품 목록은 필수 의료 시스템에 필요한 최소 의약품을 제시하는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있는 냉동 침전물 제품을 핵심 의약품으로 지정하고 바이러스 안전성이 있는 CFCs를 보완 의약품으로 변경했습니다. WFH 이사회는 이러한 변화로 감염 가능성과 출혈로 인한 사망 위험이 높아져 예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ISTH는 혈우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에서 표준 및 연장된 반감기 제품의 사용을 조건적으로 추천하여 여러 NMO의 불만을 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공식 문서는 아직 받지 못했고, “WFH에서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사회의 답변으로 GNMOT가 마무리되었습니다.


■ 네 번째 여정, 그래도 다시 한 번 밝은 미래를 그리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화창한 하늘 아래, 전 세계 혈우병 커뮤니티가 모여 2024년 WFH 세계총회를 열었습니다. 각국의 국립 회원 조직(NMO) 대표들과 이사회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혈우병 환우들을 위한 치료 및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지혜를 공유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회 첫날, 참석자들은 WFH의 새로운 이사회 구성과 계획에 주목했습니다. 세자르 가리도 회장이 두 번째 4년의 임기를 시작했고, 의료 및 비의료 분야의 새로운 이사회 위원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캐나다의 마티유 잭슨, 태국의 에카왓 수완타로즈, 미국의 미겔 에스코바르, 인도의 알록스리 바스타바가 선출되어 국제적으로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여러 국가의 조직이 준회원 또는 정회원 NMO로 합류하며 WFH 커뮤니티는 더욱 커졌습니다. 베냉 혈우병협회, 르완다 혈우병 형제회, 부룬디 혈우병 연대, 콩고민주공화국 혈우병협회, 가봉 혈우병협회, 기니 혈우병 및 기타 출혈 질환협회, 시에라리온 혈우병 및 출혈 질환 프런티어가 NMO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NMO 총 개수는 152개로 늘었고, 전 세계 혈우병 환우를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28년 WFH 세계대회를 북미 시카고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북미 지역 환우들과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전 세계 의료진과 전문가들이 모여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입니다.

이처럼 전 세계 혈우병 커뮤니티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미래를 향한 희망찬 계획을 함께 논의한 마드리드에서의 여행은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학회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소통의 부재입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당연하게도 언어의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간다면 다양한 세션에 들어가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다양한 나라의 환우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GNMOT의 취지와 WFH Congress의 취지는 전 세계의 환우들이 모여 자신의 국가의 문제점 혹은 상황에 대한 해결책 혹은 돌파구를 알게 되거나, 또는 이미 자신이 겪었던 문제 해결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일 텐데, 이러한 역할을 더 잘하려면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미 훌륭하게 혈우사회를 이룩한 나라도 있었고 다양한 갈등으로 인해 분리되거나 분쟁이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제 혈우사회가 시작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조언과 받을 수 있는 조언은 한정적이었고 그 이유로는 제가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모라이프와 코헴회, 혈우재단 등 많은 분들이 혈우병과 관련된 지식을 홍보하고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화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혈우사회가 존재하며, 그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이미 겪었거나 혹은 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교류의 증가와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 앞으로 생길 문제와 현재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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