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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언제나 건강하게,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관리자 ㅣ 2017-08-14 10:12 ㅣ 314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올해로 26살이 된 환우입니다. 늘 그랬듯 정기적으로 재단의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던 중 재단 소식지에 글을 한번 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아, 이렇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부디 여러 환우, 가족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소극적인 학생에서 진취적인 청년으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 혈우병 A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아기였을 때, 그러니까 돌이 좀

지나서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는데, 글쎄 주사를 맞은 부위가 붓고 멍이

들었다고 합니다. 금세 가라앉겠거니 하고 기다려봤지만 몇 시간, 며칠이 지나도 멍이 빠지지 않아서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혈우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혈우병인 걸 알게 되어서 그랬는지 재단등록도 빨리 하였고 그 덕에 관리도 일찍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는 주사 맞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모르겠는데, 주사만 맞는

다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소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아마도 출혈을 예방하기 위하여 학교

체육수업에도 참여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거칠게 놀지 않았던 것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자주 출혈이 발생

하고 통증이 심하여서 원치 않게 결석을 하는 날도 잦았고, 그래서 그런지 우울한 기분으로 학교에 간 날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급 담임선생님들께서도 제가 혈우 환우라는 걸 말씀드렸던 터라 조금 더 신경써주신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활발한 성격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체육수업에도 참여하였고 이전보다

출혈도 줄어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맡고 싶은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였고 방과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성격이 형성된 데는 처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혈우병이란 것을 말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환우, 부모님들이 혈우병을 밝히는 것을 두고 고민이 많을 것이고, 또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좋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엔 오히려 혈우병인 것을 말함으로써 좋았던 기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제 질병에 관심을 많이 두지도 않을뿐더러,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급상황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밝히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술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

저는 지금까지 총 3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수술은 10살에 받았습니다. 왼쪽 팔꿈치 통증이 심하여

관절경수술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팔꿈치가 아프고 출혈이 발생했는지 생각해보면, 한창 열심히

하던 게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하려면 쉴 새 없이 버튼을 두드리고 조이스틱을 돌려야 하는데, 그게

팔꿈치에 엄청난 무리를 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뭣 모르고 한 수술이라 그런지 별로 두려움이나 아픔 없이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고 잘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 초반에 오른쪽 무릎에 받은 관절경수술은 지금까지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통증이 심해서

관절경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경과가 별로 좋지 못하였습니다. 통증도 가라앉지 않았고 각도도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수술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빨리 회복하여서 퇴원하는데 저만 경과가 좋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커져갔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재수술을 하였는데도 경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군대에 가게 되니 우울함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물리치료밖에 없었습니다. 재단의원 권세진 물리치료실장님도 열심히 물리치료를

해보자고 하셨고, 그렇게 거의 1년 가까이 물리치료를 하면서 점차 무릎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만큼 건강한 상태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유지요법과 근력운동의 중요성입니다. 저는 자전거를 열심히 타면서 근력을

길렀는데,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출혈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술에 있어서는 어떠한

수술이냐 못지않게 수술을 하는 타이밍 또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어느 정도 무릎이 회복된 후에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통신사와 케이블방송사의 고객센터에서 전화

상담을 하는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조리자격증도 취득하였는데, 요리라는 게

장시간 서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갈 것을 염려하여 앉아서 하는 업무인 전화상담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면 쉬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전화상담 업무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고객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고객들로부터 각종 불평과 욕설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보상을 요구하고 시비를 거는 고객들과 통화할 때면 손발이 덜덜 떨리기도

하였습니다. 몇몇 여성 직원들은 통화 후에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담 내용을 계속 키보드로 입력을 해야 했기 때문에 팔꿈치에 무리가 갔고 장시간 앉아 있다 보니까

다리가 절이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후 점차 일에

적응하여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괜찮아졌습니다. 요즘엔 근무 계약기간이 만료되어서 잠시

쉬면서 앞으로 할 일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찾으면서 스킨스쿠버,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끝으로 감사의 동생 환우 여러분들께 유지요법과 근력운동을 잘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하되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건강을 위해 항상 신경

써주시는 권세진, 김종선 물리치료선생님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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