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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수기] 일어서는 법
관리자 ㅣ 2017-10-20 10:17 ㅣ 182

안녕하십니까 경남에 사는 혈우 환우입니다. 코헴지를 통해 짤막하게나마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절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매번 굳건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달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누구나 살면서 크게 작게 아파본 적이 있겠지만 혈우 환우들에게 있어 아프다는 것은 익숙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모든 환우의 아픔과 고통을 일반화하진 않겠다. 다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학창시절은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혈우병이 삶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체육

시간이 되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뛰었고 이를 악물었다. 고등학생 시절, 수험 준비로 종일 앉아 있던 탓에

고관절 출혈이 빈번했지만, 한 번도 학교를 쉬거나 학업을 멈추진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리 지혜로운

대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몸은 잘 따라와 주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남들 못지않게 활동도 많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 몸은 별문제 없이

묵묵히 제 몫을 수행했다.

그렇기에 내게 혈우병이란 이따금 응고인자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젯거리가 아니었으며, 내가

무언가를 하는 데 혈우병이 걸림돌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절망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극심한 무릎 통증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살면서 느껴본 통증 중에 가장 아팠다. X-ray, MRI, CT 까지 찍어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수술로 무릎 안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술을 통해 원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무릎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 전까지 관절의 기능과 각도는 모두 정상이었고 불과 한 달 전 해외에서 하루 3만 보씩 걸어도 멀쩡했던

다리였다. 그런데 수술 한 번에 무릎 각도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었다.

용납이 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하루 아침에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혈우병이란 병이, 내 삶에 걸림돌이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퇴원을 하고도 경과가 좋지 못했다. 관절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수술 통증도 심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지만 다리는 그리 호전되지 못했다. 여러 전문가들을 찾아 의견도 많이 물어

보았지만 이후 경과에 대한 소견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 상태보단 조금 나아지겠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자신을 놓아버릴 순 없었다. 호전되지 않는 다리를 보고 끊임없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시달렸지만, 할 수

있는 시도들을 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다독였다. 1년이든 2년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볼 요량이었다. 재활치료를 어디서 어떻게 할지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재단으로 마음을 굳혔다, 혈우병 환자들에 대한 치료 경험이 가장 많다는 점도 있었지만,

아직 가능성이 보인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선생님들의 말씀 때문이었다. 사실 내 다리가 얼마나 더

호전될지는 해보기 전까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마음은 위태위태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결심을 굳히고 재단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다.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치료에만 전념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1년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다리와 싸웠다.

결코 쉽진 않았다. 다리가 호전되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리를 볼 때마다, 조금 걸으면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치료를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매 순간 절망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갉아 먹었다. 하지만 좌절 속에서 포기하진 않았다. 침대에 누워

절망감이 찾아올 때면 일어나 다리를 재활하며 통증으로 절망감과 싸웠다.

그렇게 수술을 한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다리는 많이 호전되었다. 다른 이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아직 예전만 못하고, 재활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다리는 지금도 좋아지고 있다.

약간의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육안으로는 문제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마음속 1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변화는 느렸지만 분명 찾아왔다.

돌이켜 보면 재활의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심적인 고통이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쓴 이유도

육체적 고통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많은 환우 분들에게 내가 겪었던 심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사례를 통해 본인들이 느끼고 있는 심적 고통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분명 많은 환우 분들도 이렇게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 그것으로 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정한 어려움은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 있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우릴 괴롭히고 포기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과정이 잘 되어가더라도

말이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좌절 속에서 끝끝내 딛고 일어선다면,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앞서 말했듯 좌절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시련이 닥치면 우린 좌절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 그건 분명 가능하다. 그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때론 그 좌절을 딛고 일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듯,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그렇기에 우리 혈우 환우들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우리는

좌절이라는 걸림돌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재단의 많은 분들과, 혈우환우 분들의 도움과 격려, 무엇보다 물리치료실에서 매번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날 끝까지 놓지 않고 도와주신 권세진, 김종선 물리치료사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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