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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부딪혀 봐
관리자 ㅣ 2018-12-07 16:20 ㅣ 264

제 이름은 혈우병이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 살고 있는 8인자 환우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학교 선생님께 제가 혈우 환우

라는 것을 알려드렸습니다. 그 덕분에 체육시간에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체벌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같이 잘못을 해놓고도 혼자서만 매를 맞지 않을 때면 친구들이

왜 니만 안 맞노?”라며 퉁명스럽게 물어보는데 뭐라 할 말도 없고, 그럴 때면 차라리 친구들보다 두배 세배

많이 맞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제발 학교 선생님께 혈우병이란 걸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고 5학년쯤 되어서야 비로소

혈우병 환자가 아닌 제 이름으로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함께

혼난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상처 때문인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남들에게 약해보이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는 건데, 만일 제가 그때의 저의 부모님이었다면 학교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난기도 많고 밝은 아이입니다. 다만 혈우병이 있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여나 다치는 일이 있을 때면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가정에서도 열심히

치료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크게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혈우병 환우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단지 혈우병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말을 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들어간 것이 아닌 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면 친구들과 어울리며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선생님과 부모님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혈우병이란 이유로 자녀나 학생들에게 한계를 설정해두지 말고 자율적으로 혈우병을 관리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의 출혈을 막는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많은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현재 저는 부산경남 내 여러 초등학교에서 바둑선생님으로 방과후수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둑과 연을 맺게

된 것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우연히 동네 아저씨들이 길가에서 바둑을 두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자꾸 보다

보니 바둑에 관심이 생겼고, ‘나도 바둑을 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종종 동네 PC방에서 온라인 바둑게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50판 만에 처음으로 대국에서 이겼습니다.

몇 판 더 이겨보니 나날이 급수가 올랐고 흥미도 커졌습니다. 26살 때쯤에는 레벨이 9단까지 올랐고 난 이제

바둑을 좀 두나보다라는 자신감이 생기자 공원에 가서 실제로 바둑을 둬보곤 했습니다.

그동안 게임만 하였지 실제 바둑은 둬본 적이 없었던 지라 처음에는 바둑돌을 실제로 쥐는 게 어색하였는데,

그것도 자꾸 하다 보니까 손맛이 느껴졌습니다. 바둑돌을 내려놓을 때 바둑판에서 나는 탁! !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습니다. 아쉬운 것은 공원에 제 또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원이란

기원에는 다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기원에도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젊은 사람들이 많은 바둑모임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였는데 부산에는 그런 모임이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여차저차 알게 된 젊은 사람 5명이서 만나 종종 바둑을 뒀고, 이게 계기가 되어 지금은 60명 정도

되는 바둑 동호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입문자 교육 및 다양한 리그전까지 진행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의미 없던 경험이 소중한 경험이 되듯이, 바둑에서도 죽을

것만 같았던 돌이 살아나고 당연히 살 것으로 생각한 돌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바둑에서는 하나라도

더 많은 집을 차지하기 위해 대국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전투와 타협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기획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혈우 환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환우들은 여가활동에 있어 신체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바둑은 두뇌스포츠인 만큼 신체적으로 크게 무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여가선용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둑에는 수의 오묘함과 함께 인생의 이치와 통하는 교훈적

요소들도 많기 때문에 삶에 대한 통찰력과 긍정적인 자아존중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실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해봅시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실천하자. 이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저는 나이에 비해 꽤 많은 경험을 해봤습니다.

막 스무살이 된 해에 운전면허를 따서 택시기사를 하였습니다. 주위에서는 택시가 하향산업이고 젊으니 더 큰

일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면접을 보러 간 택시회사에서도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택시운전이

해보고 싶었던 저는 결국 한 택시회사에 운전기사로 취직을 하였고, 드디어 손님들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운전도 하고 돈도 벌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기특하다고 칭찬을 받을 때면 성취감도 있었고

운송종사자로서의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이 쌓입니다. 그리고 실천이 중요합니다. 생각만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직접 해봐야 새로운 모티브와 열정을

갖게 됩니다. 신중함도 좋지만 겪어보지 않고서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생각한다 한들 한 번의 경험만 할까요. 부딪히고 도전해보세요. 실패해도 좋습니다.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은 실패가 두려워 해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취업이 안 되고 공무원 준비가 안 되어서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도전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다못해 백화점 알바나 음식 배달이라도 하다 보면 무언가 모티브가 생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살아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판단력을 배양하려면 실패를 경험할 필요도

있습니다. 도전하고 부딪히시기 바랍니다.

바둑을 배우기 전까지 저는 지루하게만 보이는 바둑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여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앞으로

마냥 바둑을 잘 두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바둑을 통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아이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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