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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수기] 봄날은 간다
관리자 ㅣ 2021-04-02 14:02 ㅣ 320

얘는 아픈데도 잘하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인데요. 코로나-19 때문인지 요즘이 딱 그런 느낌의 날들입니다. 안녕하세요. 부산 해운대구에 살고 있는 혈우병 A 중증 환우입니다. 올해로 어느새 쉰이 조금 넘었는데요.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노안도 찾아와서 늙는다는 게 뭔지 확연히 몸으로 느끼는 중입니다. 얼마 전 재단 소식지에 수영에 대한 글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가 15년 넘게 수영장을 다녀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조심스럽고 부족하지만 제 경험이 다른 환우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용기를 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환우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돌 지나 기어 다니게 되면서 멍이 자주 드는 증상 때문에 혈우병 A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혈우병 진단이 쉽지 않아서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한 대학병원에서 겨우 이 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혈우병 환자로서 삶이 시작되었는데요. 지금과는 달리 마땅한 응고제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학창 시절은 출석한 날보다 결석한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아팠는데요. 초등학교 일기장 [반성란]에 늘 아프지 않겠다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은 아닌데, 제가 아프면 어머니가 속상해하니까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봄이 되면 학교 가기를 무척 꺼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일어나게 한 다음 새로 같은 반이 된 아이들에게 얘는 때리거나 하면 큰일 나니까 조심하라고 일종의 배려 아닌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타인으로부터 배려받는 일이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얘는 아프니까 좀 봐주자는 느낌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날은 결석해도 시험 치는 날 결석하는 걸 못 견뎌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얘는 아픈데도 잘하네하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영으로 달라진 삶 

수영한 지는 15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몸이 계속 나빠져서 30대 중반 무렵에는 아예 거동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양쪽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게 됐는데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재활하는 방법으로 수영을 권해주었습니다. 원래 물이라면 어릴 때부터 도망가기 바빴는데요. 그래도 큰 수술을 겪은 탓에 억지춘향으로 일단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다녔는데요. 처음에는 물에 뜨지도 못해서 수영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다니다 보니 조금씩 호흡이 되기 시작하고, 어느 날 25m를 쉬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50m 레인도 몇 차례나 거뜬히 왕복할 수 있습니다.

수영의 장점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유산소 운동이니, 전신운동이니 혹은 혈우병 환자에게는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좋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사실 말 그대로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수영 다니면서부터 출혈 횟수가 놀랄 정도로 줄었습니다. 유지 요법을 잘한 이유도 있겠지만 지속적인 운동이 근력을 강화해서 그런지 자주 출혈 되던 부위가 휴화산처럼 잠잠해졌습니다. 또 연례행사처럼 앓던 감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수영 다니는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정서적인 면도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부쩍 늘었습니다.

물론 수영이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특히 겨울에 수영장 가는 일은 때로 힘이 듭니다. 가뜩이나 추위를 잘 타는데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일이 쉽진 않습니다. 또 같은 시간에 꾸준히 다녀야 하는 점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좋은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부산의원 게시판에서 우연히 알게 됐던 재단의 수영 지원 프로그램까지 활용해오면서 지금까지도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웹퍼블리셔의 길 그리고 재택근무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꾸준히 일이란 걸 하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대학 입시에 연거푸 쓴잔을 마시고도 공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방송대 영문과에 진학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돼 졸업 후 미국 한인 신문사의 기사 번역을 2년여간 했습니다. 또 혼자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공부해서 요즘 말로 웹퍼블리셔로 줄곧 활동했습니다. 주로 의뢰를 받아서 기업체와 학원 등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이었는데요. 이 일은 집에서 스스로 시간을 안배하며 작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일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래도 감각과 기술을 잘 조화시킬 수 있으면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홈페이지 작업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시간제 재택근무를 해보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모니터링 업무를 경험해봤는데요. 오전에는 수영장을 다니고, 저녁에 집에서 근무하는 형태였습니다.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 좋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 검수 아르바이트도 접해보고 있습니다. 시절이 좋아져서인지 이렇게 재택으로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전에 없이 많아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새로운 문 그리고 다시 봄  

얼마 전 무릎이 좋지 않아서 가까운 대학병원의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가 아이구야였습니다. 이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탓이겠지요. 지금껏 잘 버텨온 것이 용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쪽 무릎 수술을 고려해보라는 말과 함께 수술 전에 다리 근육 강화를 위해 수영을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이렇게 여기저기 수리할 일이 다시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끔 같은 처지의 환우끼리 모여 1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하고 푸념하기도 하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윗세대는 지금의 우리만 되었어도 좋겠다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좋은 때인데 그 사실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고 있는 건 아닐지요. 그저 저마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젊은 환우들에게 슬쩍 귀띔하고 싶습니다. 몸이 아파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하고 주저앉지 말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뭔가를 차근차근 준비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소한 것이 나중에 반드시 새로운 문을 열어줍니다. 쉰이 넘어서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볼 수 있는 것은 젊었을 때 별것 아닌 사소한 일들을 그나마 해봤기 때문입니다. 그 일들로 말미암아 지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또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일들이 쌓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생기겠지요. 그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삶이 그만큼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파트 입구의 동백이 벌써 꽃을 피우고, 벚나무 줄기에는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곧 하얗게 꽃잎을 날리며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게 되겠지요. 봄 같지 않은 날들이지만 저 나무들처럼 할 일은 하면서 씩씩하게 견뎌봐야겠습니다. 오지랖 넓은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 저처럼 큰 수리 없이 부지런히 건강 관리해서 행복한 나날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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