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의 주기는 그 누구에게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우리 모두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평등한 삶의 조건이란 '죽음'밖에 없다는 것,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 절대적인

조건 앞에서만 우리(나)는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깨침이 '불현듯' 찾아온건 아니었다. 일면식이 있는 어느 환우의 뇌출혈로 인한 죽음과 1년에

3~4회 동창회, 반창회을 핑계로 조우하며 '아름다운 시절' 추억 길을 함께 걸었던 초등학교 동창,

그녀의 부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조건(혈우병)으로 보면 앞순위에 있는 나로서는

멈춰서서 문득문득 생각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10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그런가? 모를 일이다.

돌아보면 좋은 죽음이 참 많다. 고 정기용 건축가의 경우 마지막 떠난 봄나들이에서 가족과 직원들에게

"여러분도, 나무도, 바람도, 하늘도, 공기도 모두 고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2011년 말엔 일본에서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샐러리맨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 <엔딩노트>가

우리나라에도 상영됐다. 정년퇴직 뒤 여유로운 삶을 꿈꾸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으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꼼꼼한 성격을 발휘해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만든다. 그는 '버킷리스트'로 *평생 믿지 않던

신을 믿어보기 *한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손녀들과 재미있게 놀기 등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천주교식 장례를 선택해 죽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를 불러 용서하고 용서받는 둘만의

의식을 치른 뒤 가족들의 사랑 속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비문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명언을 남긴 작가 조지 버나드

쇼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성철 스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의 천상병 시인의 죽음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같은 필부들은 언감생심. 허나 이번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끝모를 상실감으로

무미건조하게 위로의 손길을 뻗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픈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가족들의 고통에 깊이

감화 되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 받는 자에게서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서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또하나의 깨달음.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흔한 이유는 흔한 만큼이나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하루 부질없이 후회와 또 부질없는 노력으로 소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주일의 고통으로부터 이젠 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것들과 곧 사라질 것들은 죄다 애틋하다.

내가 전적으로 수구적 일 수 있는 경우는 이때뿐이다.

생의 괴로움이 때로 견딜 수 없이 크더라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나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어야만 한다. 그것이 경망스러움의 나의 '힘'이다.

첨언: 이 글은 벗의 죽음에 대한 조의문이자 앞선 환우들께 전하여 보내는 발문입니다.

        알고보니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갈라디아 서 6:14)

        곧, ***! 죽은 건 네가 아니다.